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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의 왕후인 장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장순왕후가 세자빈 시절 승하해 세자빈묘로 조성되었으며, 석실을 사용하고 난간석과 병풍석은 제작하지 않았다. 공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추가로 석물을 제작하지 않아 15세기 세자빈묘의 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공릉은 사적으로 지정된 파주 삼릉(坡州 三陵) 중 가장 먼저 조성된 능이다.
공릉 (恭陵)
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의 왕후인 장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장순왕후가 세자빈 시절 승하해 세자빈묘로 조성되었으며, 석실을 사용하고 난간석과 병풍석은 제작하지 않았다. 공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추가로 석물을 제작하지 않아 15세기 세자빈묘의 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공릉은 사적으로 지정된 파주 삼릉(坡州 三陵) 중 가장 먼저 조성된 능이다.
장현광은 조선 시대 『여헌집』, 『성리설』, 『역학도설』 등을 저술하였으며,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종사한 학자이다. 1554년(명종 9)에 출생하여 1637년(인조 15)에 사망하였다. 자는 덕회, 호는 여헌, 시호는 문강이다. 장현광은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종사했고, 정치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장현광은 이(理)와 기(氣)를 이원적으로 보지 않고 합일적인 것 혹은 한 물건의 양면적인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장현광의 철학은 이이(李珥)의 이기심성론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남인계열에서는 이색적이고 독창적인 학설이다.
장현광 (張顯光)
장현광은 조선 시대 『여헌집』, 『성리설』, 『역학도설』 등을 저술하였으며,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종사한 학자이다. 1554년(명종 9)에 출생하여 1637년(인조 15)에 사망하였다. 자는 덕회, 호는 여헌, 시호는 문강이다. 장현광은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종사했고, 정치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장현광은 이(理)와 기(氣)를 이원적으로 보지 않고 합일적인 것 혹은 한 물건의 양면적인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장현광의 철학은 이이(李珥)의 이기심성론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남인계열에서는 이색적이고 독창적인 학설이다.
조선시대 학자 장순의 유고와 행장·묘갈명 등을 수록하여 1972년에 간행한 실기.
학거실기 (鶴渠實記)
조선시대 학자 장순의 유고와 행장·묘갈명 등을 수록하여 1972년에 간행한 실기.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북고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 신중도.
북고사 신중탱화 (北固寺 神衆幀▽畵)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북고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 신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