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기독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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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울 남대문교회, 새문안 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김영주 (金英珠)
일제강점기 서울 남대문교회, 새문안 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김응태는 일제강점기, 감리교 목사이다. 동대문교회와 인천 내리교회 등에서 목회했고, 기독교조선감리교단 경기남교구장(1941년),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 전도국장(1943년)에 이어서 해방 직전 조직된 조선기독교단 부통리자로 임명되어 일제의 종교 정책에 협력했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감리교 호헌파 총회 감독을 지냈다.
김응태 (金應泰)
김응태는 일제강점기, 감리교 목사이다. 동대문교회와 인천 내리교회 등에서 목회했고, 기독교조선감리교단 경기남교구장(1941년),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 전도국장(1943년)에 이어서 해방 직전 조직된 조선기독교단 부통리자로 임명되어 일제의 종교 정책에 협력했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감리교 호헌파 총회 감독을 지냈다.
조선기독교남부대회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나타난 최초의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이다. 그 연원은 1945년 7월 조직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찾을 수 있다. 8·15해방 직후 유일한 전국 규모의 교회 조직으로 교파를 초월한 단일 교단의 결성과 존속을 추구했다. 첫걸음은 새문안교회에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간판을 ‘조선기독교단’으로 바꿔 거는 것이었다. 1945년 11월 말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절대지지’ 등 17개의 사업 실행을 결의하였다. 한국교회의 단결을 위한 기회였으나, 친일 조직의 주도로 정통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조선기독교남부대회 (朝鮮基督敎南部大會)
조선기독교남부대회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나타난 최초의 한국 기독교 연합운동이다. 그 연원은 1945년 7월 조직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찾을 수 있다. 8·15해방 직후 유일한 전국 규모의 교회 조직으로 교파를 초월한 단일 교단의 결성과 존속을 추구했다. 첫걸음은 새문안교회에서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간판을 ‘조선기독교단’으로 바꿔 거는 것이었다. 1945년 11월 말 대회를 개최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절대지지’ 등 17개의 사업 실행을 결의하였다. 한국교회의 단결을 위한 기회였으나, 친일 조직의 주도로 정통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