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노동총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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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김약수 (金若水)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조선노농총동맹은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노농운동의 중앙단체이다. 1920년에 사회혁명주의자가 화요파 사회주의자와 결탁하여 조선노동연맹회를 결성하고, 1923년 조선노동연맹회에서 조선노농총동맹을 발기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노동공제회 잔류파와 조선노동대회는 화요파와 대립하고 있는 서울파 사회주의자를 지지하며 조선노농대회 준비회를 조직하였다. 지방의 노농단체들이 중앙의 이러한 분파에 저항하자 통합을 논의하였다. 167개 단체 204명의 대표가 모여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결성하였다. 전국적으로 확대되던 각종 쟁의에 개입해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쟁하였다.
조선노농총동맹 (朝鮮勞農總同盟)
조선노농총동맹은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노농운동의 중앙단체이다. 1920년에 사회혁명주의자가 화요파 사회주의자와 결탁하여 조선노동연맹회를 결성하고, 1923년 조선노동연맹회에서 조선노농총동맹을 발기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노동공제회 잔류파와 조선노동대회는 화요파와 대립하고 있는 서울파 사회주의자를 지지하며 조선노농대회 준비회를 조직하였다. 지방의 노농단체들이 중앙의 이러한 분파에 저항하자 통합을 논의하였다. 167개 단체 204명의 대표가 모여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결성하였다. 전국적으로 확대되던 각종 쟁의에 개입해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쟁하였다.
1922년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노동운동단체.
조선노동동맹회 (朝鮮勞動同盟會)
1922년 평양에서 조직되었던 노동운동단체.
차금봉은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기관차 화부로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등으로 노동운동을 주도하였다.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로 활동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였다.
차금봉 (車今奉)
차금봉은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기관차 화부로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장,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등으로 노동운동을 주도하였다.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로 활동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였다.
조봉암은 해방 이후 농림부장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9년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강화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년간 투옥되었다. 일본 유학 시절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의 흑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참여 등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후 7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복권되었다.
조봉암 (曺奉岩)
조봉암은 해방 이후 농림부장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9년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강화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년간 투옥되었다. 일본 유학 시절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의 흑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참여 등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후 7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