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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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집의, 교리, 보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세덕 (李世德)
조선 후기에, 집의, 교리, 보덕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충청감사,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세최 (李世最)
조선 후기에, 충청감사,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의 문신, 조태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영조 연간 무렵에 간행한 시문집.
이우당집 (二憂堂集)
조선 후기의 문신, 조태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영조 연간 무렵에 간행한 시문집.
조선 후기에, 동지부사, 이조참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희무 (李喜茂)
조선 후기에, 동지부사, 이조참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응재집』을 저술하였으며, 경종을 시해하려했다는 목호룡의 무고로 처형된 학자.
이희지 (李喜之)
조선 후기에, 『응재집』을 저술하였으며, 경종을 시해하려했다는 목호룡의 무고로 처형된 학자.
노론 4대신은 조선 후기 경종 연간에 발생한 신임옥사 때 화를 당한 노론 계열의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4명이다. 이들은 왕세제로 책봉된 영조의 대리청정을 요구하였다가 소론에 의해 반역으로 몰려 유배 보내졌고,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묵호룡의 고변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영조가 즉위하며 집권한 노론들에 의해 모두 관작이 회복되고 시호가 내려졌다. 경기도 과천에 이들을 모신 사충서원이 있다. 이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포장과 환수가 반복되었다. 노론에서는 ‘사충(四忠)’으로, 소론에서는 ‘사흉(四凶)’으로 불렀다.
노론 4대신 (老論 四大臣)
노론 4대신은 조선 후기 경종 연간에 발생한 신임옥사 때 화를 당한 노론 계열의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4명이다. 이들은 왕세제로 책봉된 영조의 대리청정을 요구하였다가 소론에 의해 반역으로 몰려 유배 보내졌고,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묵호룡의 고변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영조가 즉위하며 집권한 노론들에 의해 모두 관작이 회복되고 시호가 내려졌다. 경기도 과천에 이들을 모신 사충서원이 있다. 이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포장과 환수가 반복되었다. 노론에서는 ‘사충(四忠)’으로, 소론에서는 ‘사흉(四凶)’으로 불렀다.
기유처분은 1729년(영조 5)에 영조가 신임옥사에 대해서 탕평파의 집권 명분 확보와 노·소론의 조합을 위해 내린 처분이다. 이 처분은 조현명, 송인명 등의 탕평세력이 당시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쟁점인 신임옥사 문제의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탕평파들은 왕세제 책봉과 대리청정 요구를 역모가 아닌 것으로 규정하고 노론이 요구한 4대신의 복관에서 자손이 연루되지 않은 이건명과 조태채를 신원하자고 하였다. 노·소론 모두 반대하였으나 이인좌의 난 이후 탕평책을 추진한 영조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탕평파가 집권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
기유처분 (己酉處分)
기유처분은 1729년(영조 5)에 영조가 신임옥사에 대해서 탕평파의 집권 명분 확보와 노·소론의 조합을 위해 내린 처분이다. 이 처분은 조현명, 송인명 등의 탕평세력이 당시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쟁점인 신임옥사 문제의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탕평파들은 왕세제 책봉과 대리청정 요구를 역모가 아닌 것으로 규정하고 노론이 요구한 4대신의 복관에서 자손이 연루되지 않은 이건명과 조태채를 신원하자고 하였다. 노·소론 모두 반대하였으나 이인좌의 난 이후 탕평책을 추진한 영조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탕평파가 집권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