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주미외교위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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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은 재무부장관, 경제기획원장관, 주미대사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외교관이다. 1901년 서울 출생으로, 이승만의 요청으로 아메리칸대학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휴전 후 귀국하여 재무부 장관, IMF 대표위원,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화폐 개혁 등을 주도했으며, 대통령 전권특사로 40개국을 친선 방문했다. 주미대사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와 미국 존슨 대통령의 방한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5·16장학회 이사장, 국정자문회의 자문위원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청조소성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여받았다.
김현철 (金顯哲)
김현철은 재무부장관, 경제기획원장관, 주미대사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외교관이다. 1901년 서울 출생으로, 이승만의 요청으로 아메리칸대학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휴전 후 귀국하여 재무부 장관, IMF 대표위원,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화폐 개혁 등을 주도했으며, 대통령 전권특사로 40개국을 친선 방문했다. 주미대사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와 미국 존슨 대통령의 방한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5·16장학회 이사장, 국정자문회의 자문위원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청조소성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여받았다.
태평양전쟁기 미국 내의 친한 로비단체.
한미협회 (韓美協會)
태평양전쟁기 미국 내의 친한 로비단체.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김원용 (金元容)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1942년 대외 선전활동을 위해 만든 미국의 해외선전방송.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한국어 방송 (美國의 소리(voice of america) 韓國語 放送)
1942년 대외 선전활동을 위해 만든 미국의 해외선전방송.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길수 (韓吉洙)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