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원_고구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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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객은 고구려 왕이 백제나 신라 왕을 칭하거나 고구려 신하가 왕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부른 호칭이다. 「광개토왕비문」, 「모두루묘지」, 「충주고구려비」에 나온다. 광개토왕비문과 충주고구려비에 나온 노객은 백제 왕과 신라 왕을 뜻한다. 모두루묘지에 나온 노객은 고구려의 관료인 모두루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표현한 것이다. 노객은 본래 속민이나 노예를 뜻하지만 고구려에서는 신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고구려가 주변국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식 곧, 고구려적 천하관에 따라 사용된 것이다.
노객 (奴客)
노객은 고구려 왕이 백제나 신라 왕을 칭하거나 고구려 신하가 왕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부른 호칭이다. 「광개토왕비문」, 「모두루묘지」, 「충주고구려비」에 나온다. 광개토왕비문과 충주고구려비에 나온 노객은 백제 왕과 신라 왕을 뜻한다. 모두루묘지에 나온 노객은 고구려의 관료인 모두루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표현한 것이다. 노객은 본래 속민이나 노예를 뜻하지만 고구려에서는 신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고구려가 주변국에 비해 우월하다는 의식 곧, 고구려적 천하관에 따라 사용된 것이다.
중원은 신라시대 충주의 옛 지명이자, 1995년 충주시에 통합된 행정구역과 관련된 역사적 명칭이다. 경덕왕 대에 이곳이 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하며 중국 대륙의 ‘중원’을 본떠 ‘중원경’이라 명명하였다. 고려 전기 12목 중의 하나인 충주목으로 개편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의 감영이 설치되어 행정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1956년 충주읍이 시로 승격할 때 외곽의 12개 면을 분리하여 중원군으로 하였으며, 이후 면 단위의 편입과 조정이 이루어졌다. 중원군은 1995년 충주시와 통합해 도농복합시인 ‘충주시’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중원 (中原)
중원은 신라시대 충주의 옛 지명이자, 1995년 충주시에 통합된 행정구역과 관련된 역사적 명칭이다. 경덕왕 대에 이곳이 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하며 중국 대륙의 ‘중원’을 본떠 ‘중원경’이라 명명하였다. 고려 전기 12목 중의 하나인 충주목으로 개편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의 감영이 설치되어 행정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1956년 충주읍이 시로 승격할 때 외곽의 12개 면을 분리하여 중원군으로 하였으며, 이후 면 단위의 편입과 조정이 이루어졌다. 중원군은 1995년 충주시와 통합해 도농복합시인 ‘충주시’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월곡리에 있는 충청대학교 부속 박물관.
충청대학교 박물관 (忠淸大學校 博物館)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월곡리에 있는 충청대학교 부속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