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은 신라시대 충주의 옛 지명이자, 1995년 충주시에 통합된 행정구역과 관련된 역사적 명칭이다. 경덕왕 대에 이곳이 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하며 중국 대륙의 ‘중원’을 본떠 ‘중원경’이라 명명하였다. 고려 전기 12목 중의 하나인 충주목으로 개편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의 감영이 설치되어 행정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1956년 충주읍이 시로 승격할 때 외곽의 12개 면을 분리하여 중원군으로 하였으며, 이후 면 단위의 편입과 조정이 이루어졌다. 중원군은 1995년 충주시와 통합해 도농복합시인 ‘충주시’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중원은 삼한시대에 마한(馬韓)에 속하였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475년 고구려에 편입되어 국원성(國原城)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신라의 진흥왕(眞興王: 534~576)이 한강 유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주1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이곳이 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하며, 중국 대륙의 중원(中原)을 본떠 ‘중원경(中原京)’으로 명명하였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 塔坪里 七層石塔)[국보]이 ‘중앙탑’으로, 충주 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국보]가 ‘중원 고구려비’로 불리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고려 건국 뒤인 940년(태조 23)에 중원경은 12목 중 하나인 충주목(忠州牧)으로 개편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중원도(中原道)를 설치하여 절도사를 두었으며, 1056년(문종 10)에는 충주군을 분할하여 익안현(益安縣)을 설치하였다.
충주는 남한강 수로와 조령의 육로가 만나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조선 전기인 1395년(태조 4)에는 충청도 감영이 설치되었고, 1896년(고종 33) 13도제가 실시될 때 충주에 도청[관찰부]이 들어섰다. 충주는 도청이 1908년(융희 2) 청주로 이전될 때까지 충청도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956년 충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주변 지역 12개 면[살미면 · 대소원면 · 주덕면 · 신니면 · 노은면 · 앙성면 · 중앙탑면 · 금가면 · 동량면 · 산척면 · 엄정면 · 소태면]을 관할하는 중원군(中原郡)이 설치되어 ‘중원’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하였다. 중원군은 충주시의 도심권을 둘러싼 외곽 지역으로, 북쪽은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동쪽과 남쪽, 서쪽은 충청북도 제천시 · 괴산군 · 음성군과 접하였다. 인구는 충주시와 분리된 1년 후인 1957년 11만 3114명이었으며, 1966년에는 15만 3487명으로 충청북도 내에서도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이후 중원군에는 일부 행정구역의 변화가 있었다. 1963년에는 괴산군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어 총 13개의 면을 관할하였으며, 1973년에는 중원군 이류면 하문리가 괴산군에, 중원군 신니면 광월리 일부가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87년에는 살미면 목벌리가 충주시에, 제원군 한수면의 6개 리가 동량면에 편입되었고, 1989년 상모면 문강리 · 토계리가 살미면에, 산척면 원월리가 제원군 백운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중원군은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시와 통합되어 도농 복합시인 ‘ 충주시’로 새롭게 출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