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에는 이 지역이 마한에 속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처음엔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475년(장수왕 63)중원고구려비가 건립되기 직전에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된 듯하다.
그 뒤 553년(진흥왕 14)경 신라의 영역이 되었으며, 명칭도 국원성(國原城)으로 개칭되었다. 557년에는 국원소경(國原小京)이 되었다. 742년(경덕왕 1)에는 중원경(中原京)으로 개칭하여 통일기 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하였는데, 탑평리 칠층석탑이 ‘중앙탑’으로 불리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고려 건국 뒤인 940년(태조 23)에 중원경을 충주로 개칭하여, 고려 12목의 하나가 되었다. 995년(성종 14) 중원도를 설치하여 절도사(昌化軍)를 두었으며, 1056년(문종 10)에는 충주군을 분할하여 익안현(益安縣)을 설치하였다.
뒷날 1895년(고종 32)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청 소재지가 되면서 관찰사가 배치되어, 충청도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교통의 불편을 이유로 1908년 도청이 청주로 이전되고, 충주는 군청 소재지로 되었다. 1931년에 충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그러다가 1956년에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충주군이 중원군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에는 괴산군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에는 중원군 이류면 하문리가 괴산군에, 중원군 신니면 광월리 일부가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85년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중원군의 일부가 물에 잠겼다.
1987년에는 살미면 목벌리가 충주시에, 제원군 한수면의 6개 이가 동량면에 편입되었고, 1989년 상모면 문강리·토계리가 살미면에, 산척면 원월리가 제원군 백운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당시 중원군의 면적은 899.01㎢, 인구는 6만 9936명, 13개 면 136개 이가 있었으며, 군청 소재지는 충주시 금릉동이었다. 중원군은 1995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당시 면적은 886.21㎢, 인구는 약 6만 9000명으로, 충주시에 편입되었다. →충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