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572㎡. 흥덕왕 때 사람인 손순의 효행은 『삼국유사』 권5 효선 제9 ‘손순매아(孫順埋兒)’를 비롯해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삼강행실도』·『명심보감』 등 정사지지(正史地誌), 교화윤리서 및 아동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도 일차사료인 『삼국유사』와 거의 일치하며, 비교적 초창기에 구전자료들을 수집해 엮은 한국민간설화집이나 최근에 수집한 자료들을 보고한 구비문학조사보고서에서도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이에 의하면, 손순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더불어 남의 집에 품을 팔아 얻은 곡식으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런데 어린 자식이 늘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므로 자식을 버려 어머니의 배를 부르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 교외로 가서 땅을 파다가 기이한 돌종〔石鐘〕을 얻었다.
이에 자식을 업고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종을 두드리니 그 소리가 대궐에 들리게 되었다. 종소리를 들은 왕이 손순의 사연을 알고 그에게 효행에 대한 포상으로 집 한 채와 해마다 벼 50석을 주었다. 뒤에 손순은 옛집을 희사(喜捨)해 절을 삼아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석종을 안치하였다.
문헌들에는 현존 유허지가 명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현곡면 남사동(南莎洞) 속칭 북골〔鐘洞〕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지금 그 마을의 중앙에 수령이 수백년된 고목이 몇 그루 있고, 그 가운데에 손순의 유허지가 있다. 여기에는 조선 말기의 학자 허전(許傳)이 지은 유허비(遺墟碑)가 있었는데 근래에 와서 파괴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곳은 홍효사의 터라고도 한다. 유허지의 팽나무 수령이 250년 정도인 것으로 보아 이 유허지는 최소한 2백여 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