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청원서"
검색결과 총 10건
대한제국기 비서경, 황해도관찰사, 학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이용직 (李容稙)
대한제국기 비서경, 황해도관찰사, 학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1920년 김병조가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독립운동에 관한 사실(史實)을 기록한 역사서.
한국독립운동사략 (韓國獨立運動史略)
1920년 김병조가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독립운동에 관한 사실(史實)을 기록한 역사서.
발괄[白活]은 조선시대에 일반 백성들이 관부에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기 위하여 올리는 청원서이다. 발괄의 뜻은 억울한 사정을 글이나 말로 관아에 하소연한다는 이두 표현인데, 그 의미가 확대되어 문서명으로 사용되었다. 서식은 일반적으로 소지와 가장 유사하다.
발괄 (白▽活▽)
발괄[白活]은 조선시대에 일반 백성들이 관부에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기 위하여 올리는 청원서이다. 발괄의 뜻은 억울한 사정을 글이나 말로 관아에 하소연한다는 이두 표현인데, 그 의미가 확대되어 문서명으로 사용되었다. 서식은 일반적으로 소지와 가장 유사하다.
조동호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사료조사편찬부원, 독립신문, 동아일보 기자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이다. 1914년 여운형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19년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였으며, 상해판 『독립신문』의 기자로 신문제작을 위한 한글활자를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소한 후에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하여 항일 논설을 집필하였다. 1945년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제1차 건국준비위원회의 선전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조동호 (趙東祜)
조동호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사료조사편찬부원, 독립신문, 동아일보 기자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이다. 1914년 여운형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19년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였으며, 상해판 『독립신문』의 기자로 신문제작을 위한 한글활자를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소한 후에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하여 항일 논설을 집필하였다. 1945년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제1차 건국준비위원회의 선전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김지환은 3 · 1운동 당시 「독립의견서」, 「독립청원서」 등을 상하이의 현순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독립의견서」와 미국 윌슨대통령에게 보낼 「독립청원서」, 그리고 민족 대표들의 서명을 날인한 문서를 상하이에 미리 파견되어 있는 현순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임무를 맡았다.
김지환 (金智煥)
김지환은 3 · 1운동 당시 「독립의견서」, 「독립청원서」 등을 상하이의 현순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독립의견서」와 미국 윌슨대통령에게 보낼 「독립청원서」, 그리고 민족 대표들의 서명을 날인한 문서를 상하이에 미리 파견되어 있는 현순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임무를 맡았다.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에 13도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고,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내수 (李來修)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에 13도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고,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조선 후기에, 지평, 부교리 겸 동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대표로 독립청원서를 발송한 문신·독립운동가.
이만규 (李晩煃)
조선 후기에, 지평, 부교리 겸 동학교수 등을 역임하다가 국권 피탈 이후, 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대표로 독립청원서를 발송한 문신·독립운동가.
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사정상 복시(覆試)에 응시하기 어려울 때 다음 복시 참여를 허가해 주는 문서. 진정서.
진시장 (陳試狀)
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사정상 복시(覆試)에 응시하기 어려울 때 다음 복시 참여를 허가해 주는 문서. 진정서.
의송은 조선시대 장자가 관찰사에게 소장·청원서를 올렸을 때 관찰사가 해당 군현에 내리는 처분이자 민인들이 관찰사·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는 청원서이다. 15세기의 '의송'은 관찰사가 군현 수령에게 내리는 처분을 의미하였는데, 16세기에는 관찰사에게 올리는 소지도 의송이라 하여, 두 가지 뜻이 동시에 혼용되었다.
의송 (議送)
의송은 조선시대 장자가 관찰사에게 소장·청원서를 올렸을 때 관찰사가 해당 군현에 내리는 처분이자 민인들이 관찰사·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는 청원서이다. 15세기의 '의송'은 관찰사가 군현 수령에게 내리는 처분을 의미하였는데, 16세기에는 관찰사에게 올리는 소지도 의송이라 하여, 두 가지 뜻이 동시에 혼용되었다.
윤충하는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 및 워싱턴군축회의 청원서 작성에 참여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07년 나인영, 오기호 등이 주동이 된 을사오적 처단 거사에 적극 동참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 유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작성할 때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보내는 청원서에 태극교 대표로 참여하여 일제의 한국 병합 부당성을 설파하였다.
윤충하 (尹忠夏)
윤충하는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 및 워싱턴군축회의 청원서 작성에 참여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07년 나인영, 오기호 등이 주동이 된 을사오적 처단 거사에 적극 동참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 유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작성할 때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보내는 청원서에 태극교 대표로 참여하여 일제의 한국 병합 부당성을 설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