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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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강덕동에 있는 고등교육기관.
오중흡청진제일사범대학 (吳仲翕淸津第一師範大學)
북한의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강덕동에 있는 고등교육기관.
관북공업지역은 함경남북도 지방에 형성되어 있는 공업지역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지역을 북선이라고 불렀으며, 1930년대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이 지역의 공업지대를 북선공업지대라 불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행정구역이 변천되었는데,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라선특별시가 관북에 해당한다. 1970년대 한국의 일부 학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관북 지역의 공업지대를 관북공업지역이라 불렀다. 현재 관북공업지역에는 대공업지구로 함흥공업지구와 청진공업지구가, 소공업지구로 김책공업지구와 원산공업지구가 있다.
관북공업지역 (關北工業地域)
관북공업지역은 함경남북도 지방에 형성되어 있는 공업지역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지역을 북선이라고 불렀으며, 1930년대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이 지역의 공업지대를 북선공업지대라 불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행정구역이 변천되었는데,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라선특별시가 관북에 해당한다. 1970년대 한국의 일부 학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관북 지역의 공업지대를 관북공업지역이라 불렀다. 현재 관북공업지역에는 대공업지구로 함흥공업지구와 청진공업지구가, 소공업지구로 김책공업지구와 원산공업지구가 있다.
일제강점기 송만갑, 김정문의 제자로 송만갑협률사에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
박봉래 (朴奉來)
일제강점기 송만갑, 김정문의 제자로 송만갑협률사에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
채굴공업과 금속공업 부문의 고급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
광산금속대학 (鑛山金屬大學)
채굴공업과 금속공업 부문의 고급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
십육국사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초에 국사로 책봉되었거나 후대에 국사로 추인된 전라남도 조계산 송광사에서 활동한 16명의 승려이다. 고려시대에 수선사(修禪社)의 사주(社主)로서 국사의 칭호를 받았던 15인과 조선 초기에 송광사를 중창하였던 고봉(高峰)을 합쳐서 이른다. 이들의 영정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십육국사의 배출로 인하여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십육국사 (十六國師)
십육국사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초에 국사로 책봉되었거나 후대에 국사로 추인된 전라남도 조계산 송광사에서 활동한 16명의 승려이다. 고려시대에 수선사(修禪社)의 사주(社主)로서 국사의 칭호를 받았던 15인과 조선 초기에 송광사를 중창하였던 고봉(高峰)을 합쳐서 이른다. 이들의 영정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십육국사의 배출로 인하여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장채극은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 사회주의자동맹 발기인 등을 역임한 서울청년회계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3·1운동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국민대회사건을 일으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하여 서울청년회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으며, 신간회 청진지회 집행위원을 맡았다.
장채극 (張彩極)
장채극은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 사회주의자동맹 발기인 등을 역임한 서울청년회계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3·1운동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국민대회사건을 일으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사회주의운동에 투신하여 서울청년회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으며, 신간회 청진지회 집행위원을 맡았다.
윤선녀는 1930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근우회 회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보흥여학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근우회 회령지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달 보흥여학교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2월에는 청진고등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그러나 시위 모의가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윤선녀 (尹仙女)
윤선녀는 1930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근우회 회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보흥여학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근우회 회령지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달 보흥여학교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2월에는 청진고등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그러나 시위 모의가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