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최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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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은 19세기 후반 동학농민운동 당시 호남창의소 총관령 등을 역임한 동학교단의 호남 대접주이다. 1890년경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이후 삼례집회와 보은집회 때 큰 활약을 하여 대접주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총관령직을 맡아서 동학농민군의 중심 지도부가 되었다. 2차 봉기 이후 북상하는 과정에서 청주성 전투가 전개되었는데, 이곳에서 대패한 후 체포되어 1895년 1월 처형되었다.
김개남 (金開南)
김개남은 19세기 후반 동학농민운동 당시 호남창의소 총관령 등을 역임한 동학교단의 호남 대접주이다. 1890년경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이후 삼례집회와 보은집회 때 큰 활약을 하여 대접주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총관령직을 맡아서 동학농민군의 중심 지도부가 되었다. 2차 봉기 이후 북상하는 과정에서 청주성 전투가 전개되었는데, 이곳에서 대패한 후 체포되어 1895년 1월 처형되었다.
김낙철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활동에 참여한 천도교인이다. 1858년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에 동학에 입도하였다. 1893년 복합상소운동에 참여하였고 1차 동학운동 때 전봉준의 농민군과는 별개로 활동하였다. 제2차 동학운동 과정에서는 전봉준과 연합하여 활동하다가 1894년 12월에 체포되었다. 이후 최시형을 도와 동학교단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고 천도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김낙철 (金洛喆)
김낙철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동학농민운동과 천도교 활동에 참여한 천도교인이다. 1858년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에 동학에 입도하였다. 1893년 복합상소운동에 참여하였고 1차 동학운동 때 전봉준의 농민군과는 별개로 활동하였다. 제2차 동학운동 과정에서는 전봉준과 연합하여 활동하다가 1894년 12월에 체포되었다. 이후 최시형을 도와 동학교단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고 천도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김덕명은 1894년 동학운동 당시 활동하였던 동학농민군 대접주이다. 1886년 동학에 입도하여 비슷한 시기에 입도한 손화중, 김개남, 최경선 등과 함께 원평집회와 백산대회, 전주성 점령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본군에 대항해서 끝까지 항전하다가, 1895년 3월 29일 전봉준 · 손화중 · 최경선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김덕명 (金德明)
김덕명은 1894년 동학운동 당시 활동하였던 동학농민군 대접주이다. 1886년 동학에 입도하여 비슷한 시기에 입도한 손화중, 김개남, 최경선 등과 함께 원평집회와 백산대회, 전주성 점령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본군에 대항해서 끝까지 항전하다가, 1895년 3월 29일 전봉준 · 손화중 · 최경선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개항기 봉성 대접주, 금구의 접주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
김방서 (金邦瑞)
개항기 봉성 대접주, 금구의 접주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
때를 살려서 쓸 것을 강조한 최시형의 가르침을 뜻하는 천도교교리.
용시용활 (用時用活)
때를 살려서 쓸 것을 강조한 최시형의 가르침을 뜻하는 천도교교리.
조선후기 동학의 의식과 제도 제정에 기여한 동학 지도자.
서인주 (徐仁周)
조선후기 동학의 의식과 제도 제정에 기여한 동학 지도자.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고려혁명위원회 고문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이종훈 (李鍾勳)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고려혁명위원회 고문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조선후기 동양의 황제가 되려고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천도교인, 농민운동가.
이필제 (李弼濟)
조선후기 동양의 황제가 되려고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천도교인, 농민운동가.
최시형이 사람이 공경해야 할 세 가지로 하늘, 사람, 만물(물건)을 제시한 천도교교리.
삼경사상 (三敬思想)
최시형이 사람이 공경해야 할 세 가지로 하늘, 사람, 만물(물건)을 제시한 천도교교리.
1920년대 후반에 개교한 천도교의 한 분파.
천도명리교 (天道明理敎)
1920년대 후반에 개교한 천도교의 한 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