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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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기무처는 조선 말기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던 최고 정책결정 기관이다.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면서 친일파 정권이 수립되자 제도개혁과 신정권 탄생에 따른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합의체 형식으로 구성된 초정부적 입법·정책결정기구로서 최고집권자의 회의체 기능을 수행했다. 7월 28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실질적인 활동을 하며 210건의 의안을 심의·통과시켰다. 내부 갈등이 있었던 데다 일본의 대한정책이 적극개입 정책으로 바뀌고 고종도 전제왕권을 제약하는 기구로 인식하면서 12월 17일 칙령으로 폐지되었다.
군국기무처 (軍國機務處)
군국기무처는 조선 말기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던 최고 정책결정 기관이다.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면서 친일파 정권이 수립되자 제도개혁과 신정권 탄생에 따른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합의체 형식으로 구성된 초정부적 입법·정책결정기구로서 최고집권자의 회의체 기능을 수행했다. 7월 28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실질적인 활동을 하며 210건의 의안을 심의·통과시켰다. 내부 갈등이 있었던 데다 일본의 대한정책이 적극개입 정책으로 바뀌고 고종도 전제왕권을 제약하는 기구로 인식하면서 12월 17일 칙령으로 폐지되었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특별위원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특별위원회.
오적암살단은 1906년∼1907년에 우국지사들이 이완용·이근택·박제순·이지용·권중현 등 이른바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조직이 여러 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6년 군부대신 이근택의 집에 잠입하여 부상을 입힌 기산도가 속한 조직과 나인영·오기호가 주도한 자신회가 대표적인 조직이다. 5적을 처단한 다음 친일정부를 전복하고 신정부를 수립할 계획까지 세운 자신회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권중현을 부상시키는 데 머물렀다. 거사 실패로 투옥되고 유배를 가기도 했지만 조직원들은 일제강점기에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오적암살단 (五賊暗殺團)
오적암살단은 1906년∼1907년에 우국지사들이 이완용·이근택·박제순·이지용·권중현 등 이른바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조직이 여러 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6년 군부대신 이근택의 집에 잠입하여 부상을 입힌 기산도가 속한 조직과 나인영·오기호가 주도한 자신회가 대표적인 조직이다. 5적을 처단한 다음 친일정부를 전복하고 신정부를 수립할 계획까지 세운 자신회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권중현을 부상시키는 데 머물렀다. 거사 실패로 투옥되고 유배를 가기도 했지만 조직원들은 일제강점기에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개항기 밀양부사, 내장원장, 농상공부협판 등을 역임한 관리.
정병하 (鄭秉夏)
개항기 밀양부사, 내장원장, 농상공부협판 등을 역임한 관리.
1926년 1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병인의용대 (丙寅義勇隊)
1926년 1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일제강점기 때, 남화한인청년연맹 등에서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엄순봉 (嚴舜奉)
일제강점기 때, 남화한인청년연맹 등에서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갑자구락부는 1924년 8월 경성에서 재조(在朝)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이다. 이 단체는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해 조사하고 이를 청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자치론’에 관해서는 독립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중점을 둔 참정권 청원 운동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시국 대회와 시국 간담회 등을 개최하였다.
갑자구락부 (甲子俱樂部)
갑자구락부는 1924년 8월 경성에서 재조(在朝) 일본인과 조선인 유력 세력이 함께 조직한 친일 정치 단체이다. 이 단체는 각종 정치 현안에 관해 조사하고 이를 청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자치론’에 관해서는 독립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중점을 둔 참정권 청원 운동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시국 대회와 시국 간담회 등을 개최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 2월 27일 한일 과거사 청산과 근현대사 민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설립된 연구단체이다. '반민족문제연구소'로 설립되었다가 '민족문제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한국사회의 친일 관련 문제들을 바로잡고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라는 과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연구 활동과 역사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民族問題硏究所)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 2월 27일 한일 과거사 청산과 근현대사 민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설립된 연구단체이다. '반민족문제연구소'로 설립되었다가 '민족문제연구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한국사회의 친일 관련 문제들을 바로잡고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라는 과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연구 활동과 역사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