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칠정산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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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법교정소는 조선 전기 세종 때 역산 연구를 전담했던 임시 관청이다. 문신 관료와 산학인이 산법교정소에 소속되어 산법을 익히고 역법을 추보하였다. 이 기능은 후에 또 다른 임시 관청인 역산소(曆算所)로 이관되었다. 산법교정소의 성과는 『칠정산(七政算)』 편찬으로 이어졌다.
산법교정소 (算法校正所)
산법교정소는 조선 전기 세종 때 역산 연구를 전담했던 임시 관청이다. 문신 관료와 산학인이 산법교정소에 소속되어 산법을 익히고 역법을 추보하였다. 이 기능은 후에 또 다른 임시 관청인 역산소(曆算所)로 이관되었다. 산법교정소의 성과는 『칠정산(七政算)』 편찬으로 이어졌다.
중수대명력은 1171년(명종 1) 금나라의 조지미가 양급의 『대명력(大明曆)』을 중수하여 편찬한 역법이다. 요나라 가준의 『대명력』과 북송의 『기원력(紀元曆)』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금에서는 1182년(명종 12)부터 1234년(고종 21)까지 사용되었다. 또한 몽골은 1215년(고종 2)부터 이 역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몽골을 이은 원에서는 『수시력(授時曆)』이 시행되기 전인 1280년까지 사용되었다.
중수대명력 (重修大明曆)
중수대명력은 1171년(명종 1) 금나라의 조지미가 양급의 『대명력(大明曆)』을 중수하여 편찬한 역법이다. 요나라 가준의 『대명력』과 북송의 『기원력(紀元曆)』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금에서는 1182년(명종 12)부터 1234년(고종 21)까지 사용되었다. 또한 몽골은 1215년(고종 2)부터 이 역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몽골을 이은 원에서는 『수시력(授時曆)』이 시행되기 전인 1280년까지 사용되었다.
대통추보관은 조선 후기에 『대통칠정력(大統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였던 관원이다. 조선 후기에 대통력(大統曆)의 방법, 정확히 말하자면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의 방법으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계산하여 『칠정력(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는 관원을 말한다. 대통추보관의 직책은 1791년(정조 15)에 철폐되었는데, 그 계산과 편찬의 업무는 삼력관(三曆官)의 하위에 설치된 수술관(修述官)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
대통추보관 (大統推步官)
대통추보관은 조선 후기에 『대통칠정력(大統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였던 관원이다. 조선 후기에 대통력(大統曆)의 방법, 정확히 말하자면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의 방법으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계산하여 『칠정력(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는 관원을 말한다. 대통추보관의 직책은 1791년(정조 15)에 철폐되었는데, 그 계산과 편찬의 업무는 삼력관(三曆官)의 하위에 설치된 수술관(修述官)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