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태조_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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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술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진보성 성주 및 의성부 성주를 역임한 장군이다. 그는 신라 말에 진보성주 장군으로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가 922년(태조 5)에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29년(태조 12)에 의성부의 성주 장군으로 있다가 후백제의 견훤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후에는 의성의 지역민들에 의해 성황신으로 받들어졌다.
김홍술 (金洪術)
김홍술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진보성 성주 및 의성부 성주를 역임한 장군이다. 그는 신라 말에 진보성주 장군으로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가 922년(태조 5)에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29년(태조 12)에 의성부의 성주 장군으로 있다가 후백제의 견훤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후에는 의성의 지역민들에 의해 성황신으로 받들어졌다.
몽량원부인은 고려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제28 왕비이다. 아버지는 박수경인데, 그는 평주 출신으로 태조 왕건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후백제 견훤과의 조물군 전투에서는 그의 부대만이 승리하였고 발성 전투에서는 위기에 빠진 태조를 구하기도 하였다. 그 공으로 역분전을 제정할 때 그에게 특별히 전 200결을 주었다. 정종의 즉위에도 공로를 세웠고 광종 즉위 후에도 국초에 공로를 세운 자들에게 곡식을 하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광종의 호족 숙청 과정에서 아들 3명이 투옥되자 화병으로 죽었다.
몽량원부인 (夢良院夫人)
몽량원부인은 고려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제28 왕비이다. 아버지는 박수경인데, 그는 평주 출신으로 태조 왕건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후백제 견훤과의 조물군 전투에서는 그의 부대만이 승리하였고 발성 전투에서는 위기에 빠진 태조를 구하기도 하였다. 그 공으로 역분전을 제정할 때 그에게 특별히 전 200결을 주었다. 정종의 즉위에도 공로를 세웠고 광종 즉위 후에도 국초에 공로를 세운 자들에게 곡식을 하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광종의 호족 숙청 과정에서 아들 3명이 투옥되자 화병으로 죽었다.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복지겸 (卜智謙)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936년 고려 태조가 백관을 훈계하기 위하여 저술하여 반포한 교훈서.
계백료서 (誡百寮書)
936년 고려 태조가 백관을 훈계하기 위하여 저술하여 반포한 교훈서.
고려전기 삼중대광 문하시중을 역임한 장수.
김선궁 (金宣弓)
고려전기 삼중대광 문하시중을 역임한 장수.
고려전기 대광, 아보 등을 역임한 무신.
김선평 (金宣平)
고려전기 대광, 아보 등을 역임한 무신.
신숭겸은 고려 초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장수이다. 918년에 홍유·배현경·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927년에 신라 왕경까지 쳐들어가서 경애왕을 시해하고 약탈을 일삼자, 왕건은 친히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대구의 공산에서 견훤에 맞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숭겸은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처지에 빠진 왕건을 대신해서 싸우다가 원보 김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신숭겸 (申崇謙)
신숭겸은 고려 초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장수이다. 918년에 홍유·배현경·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927년에 신라 왕경까지 쳐들어가서 경애왕을 시해하고 약탈을 일삼자, 왕건은 친히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대구의 공산에서 견훤에 맞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숭겸은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처지에 빠진 왕건을 대신해서 싸우다가 원보 김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윤다는 고려 전기 구산선문 중 동리산문의 제3조인 승려다. 혜철의 제자인 여선사에게 선법을 익혀 동리산문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고려 태조의 초청을 받아 흥왕사에 머물기도 하였으며, 왕자 왕욱이 제자가 되는 등 왕실과의 관계가 돈독하였고, 동리산문이 크게 확산되었다. 이후 태안사로 돌아와 945년에 입적하였다. 제자들에게 계율을 강조하고, 선을 익히면서 경전에도 의지하는 선·교융합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왕이 탑과 탑비 건립을 명하였고, 태안사에 세워져 있다. 시호는 광자대사(廣慈大師)이다.
윤다 (允多)
윤다는 고려 전기 구산선문 중 동리산문의 제3조인 승려다. 혜철의 제자인 여선사에게 선법을 익혀 동리산문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고려 태조의 초청을 받아 흥왕사에 머물기도 하였으며, 왕자 왕욱이 제자가 되는 등 왕실과의 관계가 돈독하였고, 동리산문이 크게 확산되었다. 이후 태안사로 돌아와 945년에 입적하였다. 제자들에게 계율을 강조하고, 선을 익히면서 경전에도 의지하는 선·교융합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왕이 탑과 탑비 건립을 명하였고, 태안사에 세워져 있다. 시호는 광자대사(廣慈大師)이다.
고려의 제1대 왕, 태조 왕건의 어머니로, 고려 건국 후에 추존된 왕족.
위숙왕후 (威肅王后)
고려의 제1대 왕, 태조 왕건의 어머니로, 고려 건국 후에 추존된 왕족.
유금필은 고려 초의 개국공신으로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군이다. 그는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가담하여 개국공신이 된 뒤에 거듭 승진하여 대광이 되었다. 골암진, 연산진, 임존군, 조물성, 독기진, 고창군, 운주 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나주를 경략한 뒤에 견훤의 고려 귀부를 이끌어내고, 고려가 후백제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일리천 전투에 출전하여 승리를 도우면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유금필 (庾黔弼)
유금필은 고려 초의 개국공신으로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장군이다. 그는 태조 왕건의 고려 건국에 가담하여 개국공신이 된 뒤에 거듭 승진하여 대광이 되었다. 골암진, 연산진, 임존군, 조물성, 독기진, 고창군, 운주 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나주를 경략한 뒤에 견훤의 고려 귀부를 이끌어내고, 고려가 후백제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 일리천 전투에 출전하여 승리를 도우면서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유신성은 고려 전기 충주유씨(忠州劉氏) 출신으로, 광종 묘정(廟廷)에 배향된 공신이다. 그는 성종 대 배향되었는데, 덕종 때에는 태부(太傅)에 추증되었다. 또한, 충주 정토사(淨土寺) 법경대사(法鏡大師)의 세속 제자이다. 충추유씨는 충주의 유력한 지역 세력으로 왕태후를 배출하였으며, 정종과 광종의 외가이다.
유신성 (劉新城)
유신성은 고려 전기 충주유씨(忠州劉氏) 출신으로, 광종 묘정(廟廷)에 배향된 공신이다. 그는 성종 대 배향되었는데, 덕종 때에는 태부(太傅)에 추증되었다. 또한, 충주 정토사(淨土寺) 법경대사(法鏡大師)의 세속 제자이다. 충추유씨는 충주의 유력한 지역 세력으로 왕태후를 배출하였으며, 정종과 광종의 외가이다.
고려의 제1대 왕, 태조 왕건의 조부로, 고려 건국 이후에 경강대왕으로 추존된 왕족.
의조경강대왕 (懿祖景康大王)
고려의 제1대 왕, 태조 왕건의 조부로, 고려 건국 이후에 경강대왕으로 추존된 왕족.
최인욱은 식민지 시기에 등단하여 「초적」, 「임꺽정」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자 아동문학가, 평론가이다. 1938년 『매일신보』에서 등단하여 1939년 『조광』에 「월하취적도」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임꺽정」, 「초적」, 「태조왕건」 등 신문 연재 역사소설이 있다. 조선 후기 국문 장편소설 「임화정연」과 「사명당전」을 편역했고, 동양 고전 『고문진보』, 『사기열전』과 중국 고소설 『요재지이』를 번역하는 등 다양한 문필 활동을 펼쳤다. 한국전쟁기에는 공군창공구락부에서 종군 작가단으로 활동했다.
최인욱 (崔仁旭)
최인욱은 식민지 시기에 등단하여 「초적」, 「임꺽정」 등을 저술한 소설가이자 아동문학가, 평론가이다. 1938년 『매일신보』에서 등단하여 1939년 『조광』에 「월하취적도」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임꺽정」, 「초적」, 「태조왕건」 등 신문 연재 역사소설이 있다. 조선 후기 국문 장편소설 「임화정연」과 「사명당전」을 편역했고, 동양 고전 『고문진보』, 『사기열전』과 중국 고소설 『요재지이』를 번역하는 등 다양한 문필 활동을 펼쳤다. 한국전쟁기에는 공군창공구락부에서 종군 작가단으로 활동했다.
혜종은 고려 전기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43~945년이며, 태조와 나주 출신의 장화왕후 오씨 소생이다. 박술희의 도움을 받아 921년에 정윤으로 책봉되었으며, 통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렇지만 혜종은 즉위한 뒤부터 계속해서 박술희와 왕위쟁탈을 노리던 왕규, 그리고 정종까지 서로 대립하면서 불안한 정국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혜종은 자신의 신변 위협까지 느끼다가 병을 얻어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혜종 (惠宗)
혜종은 고려 전기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43~945년이며, 태조와 나주 출신의 장화왕후 오씨 소생이다. 박술희의 도움을 받아 921년에 정윤으로 책봉되었으며, 통일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렇지만 혜종은 즉위한 뒤부터 계속해서 박술희와 왕위쟁탈을 노리던 왕규, 그리고 정종까지 서로 대립하면서 불안한 정국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혜종은 자신의 신변 위협까지 느끼다가 병을 얻어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릉(顯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신혜왕후 유씨의 합장릉이다. 개성특별시 서쪽 만수산 남록에 있으며, 북한 국보급유적이다. 1992년 태조 현릉의 널방을 발굴하여 벽화를 발견하고,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현재 개성특별시 고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년 태조 현릉을 방문한 김일성의 지시로 1994년 태조 현릉을 헐고 왕건왕릉을 개건하여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현릉 (顯陵)
현릉(顯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신혜왕후 유씨의 합장릉이다. 개성특별시 서쪽 만수산 남록에 있으며, 북한 국보급유적이다. 1992년 태조 현릉의 널방을 발굴하여 벽화를 발견하고,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현재 개성특별시 고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년 태조 현릉을 방문한 김일성의 지시로 1994년 태조 현릉을 헐고 왕건왕릉을 개건하여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왕건 동상은 951년에 제작된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조각상이다. 고려 왕실 최고의 상징물로서 개경의 봉은사 진전(眞殿)에 안치되어 연등회의 첫날이나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에 제사를 올렸다. 고려 망국 이후 1429년에 고려 태조의 능인 현릉(顯陵) 옆에 매장되었는데, 1992년 현릉 확장 공사 중에 출토되었다. 황제의 복식을 착용한 나체상으로 왕건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동명왕 숭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의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체상에 옷을 입히는 고구려계통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고려의 황제제도를 실증하는 유물로 중요하다.
왕건 동상 (王建 銅像)
왕건 동상은 951년에 제작된 고려 태조 왕건의 청동 조각상이다. 고려 왕실 최고의 상징물로서 개경의 봉은사 진전(眞殿)에 안치되어 연등회의 첫날이나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에 제사를 올렸다. 고려 망국 이후 1429년에 고려 태조의 능인 현릉(顯陵) 옆에 매장되었는데, 1992년 현릉 확장 공사 중에 출토되었다. 황제의 복식을 착용한 나체상으로 왕건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동명왕 숭배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의 조각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체상에 옷을 입히는 고구려계통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고려의 황제제도를 실증하는 유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