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토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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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화 신학은 서구 신학의 모방이나 답습에서 벗어나 ‘한국적 신학’을 수립하기 위하여 한국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종교 가치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신학이다. 한국적 신학, 상황화 신학이라고도 한다. 19세기 말 개척 선교사들은 토착 문화와 상황에 적응하는 선교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토착화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합주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비판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 선교사들은 토착 신학 수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자신학화’(自神學化) 개념을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토착화 신학 역시 선교학의 일종이라는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
토착화 신학 (土着化 神學)
토착화 신학은 서구 신학의 모방이나 답습에서 벗어나 ‘한국적 신학’을 수립하기 위하여 한국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종교 가치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신학이다. 한국적 신학, 상황화 신학이라고도 한다. 19세기 말 개척 선교사들은 토착 문화와 상황에 적응하는 선교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토착화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합주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비판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 선교사들은 토착 신학 수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자신학화’(自神學化) 개념을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토착화 신학 역시 선교학의 일종이라는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
『기독교사상』은 1957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기독교의 토착화작업·기독교문화 향상 등을 목적으로 창간한 월간지이다. 현재 지령 700호를 넘어 계속 발행중이다. 사회 문화적 변동에 따라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하고 다양한 기독교 신학사상을 현대인에게 입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독교사상 (基督敎思想)
『기독교사상』은 1957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기독교의 토착화작업·기독교문화 향상 등을 목적으로 창간한 월간지이다. 현재 지령 700호를 넘어 계속 발행중이다. 사회 문화적 변동에 따라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하고 다양한 기독교 신학사상을 현대인에게 입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회는 같은 신앙을 가진 신자들로 구성된 개신교 조직이나 종교 건축물이다. 교의적으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즉 신비체를 상징하지만, 구체적 현실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종교 집단으로 존재한다.
교회 (敎會)
교회는 같은 신앙을 가진 신자들로 구성된 개신교 조직이나 종교 건축물이다. 교의적으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 즉 신비체를 상징하지만, 구체적 현실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종교 집단으로 존재한다.
신학은 천주교에서 초인간적 존재의 계시를 신앙과 이성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국 천주교 신학은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전래된 한문 천주교 서적을 연구한 지성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서구 신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1960년대 후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을 수용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일부 신학자들이 토착화, 교회일치, 해방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졌고, 남미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영향으로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신학적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천주교 사회교리’가 전파되며 ‘천주교 사회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신학 (神學)
신학은 천주교에서 초인간적 존재의 계시를 신앙과 이성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국 천주교 신학은 조선 후기에 중국에서 전래된 한문 천주교 서적을 연구한 지성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서구 신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1960년대 후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을 수용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일부 신학자들이 토착화, 교회일치, 해방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졌고, 남미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의 영향으로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신학적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천주교 사회교리’가 전파되며 ‘천주교 사회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윤성범은 해방 후 세계종교사학회 실행위원, 감리교신학대학 학장, 한국종교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기독교 신학자이자 목사이다. 해방 후 한국의 진보주의 신학계를 대표하는 신학자 중 한 명으로 ‘한국적 신학’을 제창하며 1960~1970년대 장로교 신학자들과 ‘토착화 신학논쟁’을 전개하였다.
윤성범 (尹聖範)
윤성범은 해방 후 세계종교사학회 실행위원, 감리교신학대학 학장, 한국종교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기독교 신학자이자 목사이다. 해방 후 한국의 진보주의 신학계를 대표하는 신학자 중 한 명으로 ‘한국적 신학’을 제창하며 1960~1970년대 장로교 신학자들과 ‘토착화 신학논쟁’을 전개하였다.
천주가사는 조선 후기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의 교훈을 전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사이다. 유행하던 가사 장르를 차용하였다. 천주교가사 · 천주교성가 · 천주찬가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전승자들은 천당노래 · 천당강론 · 사주구령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당노래’란 하늘 나라를 향하여 영생을 꿈꾸며 사는 순례자들이 본향인 천당길을 닦는 노래라는 뜻이며, ‘강론’이라는 명칭은 가사 내용이 교훈과 교화를 주로 한 데서 붙인 것이다. 또한 ‘사주구령가’란 천주를 섬기고 자기 영혼을 구하는 신앙의 목적을 노래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천주가사 (天主歌辭)
천주가사는 조선 후기 천주교의 교리와 신앙의 교훈을 전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사이다. 유행하던 가사 장르를 차용하였다. 천주교가사 · 천주교성가 · 천주찬가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전승자들은 천당노래 · 천당강론 · 사주구령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당노래’란 하늘 나라를 향하여 영생을 꿈꾸며 사는 순례자들이 본향인 천당길을 닦는 노래라는 뜻이며, ‘강론’이라는 명칭은 가사 내용이 교훈과 교화를 주로 한 데서 붙인 것이다. 또한 ‘사주구령가’란 천주를 섬기고 자기 영혼을 구하는 신앙의 목적을 노래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1946년 4월 21일 개성에 한국 최초 한국인 사제인 방유룡이 창설한 천주교 여자 수도회이다. 1952년 서울대교구로부터 교구 설립 수도회로 인준을 받았으며, 2021년 9월 성좌(聖座, 교황청)로부터 성좌 설립 수도회로 인준을 받았다. 영성은 점성, 침묵, 대월, 면형무아이다. 순교자 현양, 선교, 의료, 교육, 사회 사목, 재속 복자회 등 다양한 사도직으로 세상과 연대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韓國殉敎福者修女會)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1946년 4월 21일 개성에 한국 최초 한국인 사제인 방유룡이 창설한 천주교 여자 수도회이다. 1952년 서울대교구로부터 교구 설립 수도회로 인준을 받았으며, 2021년 9월 성좌(聖座, 교황청)로부터 성좌 설립 수도회로 인준을 받았다. 영성은 점성, 침묵, 대월, 면형무아이다. 순교자 현양, 선교, 의료, 교육, 사회 사목, 재속 복자회 등 다양한 사도직으로 세상과 연대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변선환은 해방 이후 감리교신학대학 원장·학장·한국기독교공동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신학자이다. 1927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1995년에 사망했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신석구 목사에게 감화되어 기독교인이 되었다.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고, 현 한신대학교인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드류(Drew) 대학교에 유학을 다녀온 후 감리교신학대학 교수가 되었다. 신학자로서 변선환은 ‘종교다원주의’ 노선을 취하여 보수적 목회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논저로 『변선환 전집』(전7권)과 설교집 『인생은 살만한가』가 있다.
변선환 (邊鮮煥)
변선환은 해방 이후 감리교신학대학 원장·학장·한국기독교공동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신학자이다. 1927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1995년에 사망했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신석구 목사에게 감화되어 기독교인이 되었다.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고, 현 한신대학교인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드류(Drew) 대학교에 유학을 다녀온 후 감리교신학대학 교수가 되었다. 신학자로서 변선환은 ‘종교다원주의’ 노선을 취하여 보수적 목회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논저로 『변선환 전집』(전7권)과 설교집 『인생은 살만한가』가 있다.
김익진(金益鎭)은 해방 이후 순심중학교 교장, 성의중학교 교감, 근화여자중학교 교감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문필가이다. 한국가톨릭교회에서 1950~1970년대에 활동했던 대표적 평신도이자 교육자, 문필가로서 가톨릭신앙의 토착화를 추진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인정된다.
김익진 (金益鎭)
김익진(金益鎭)은 해방 이후 순심중학교 교장, 성의중학교 교감, 근화여자중학교 교감 등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문필가이다. 한국가톨릭교회에서 1950~1970년대에 활동했던 대표적 평신도이자 교육자, 문필가로서 가톨릭신앙의 토착화를 추진한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인정된다.
방유룡(方有龍)은 해방 후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에 맞는 한국순교복자가족수도회를 창설한 사제이자 그리스도교 영성을 한국의 정서와 언어로 적합하게 구현한 영성가이다. 해방 후 수녀회(1946년), 성직수도회(1953년), 재속복자회(제3회, 1957년), 빨마수녀회(1962년)를 창설하였다. 가톨릭 신앙을 동양적 정서 속에 녹여낸 고유한 수도 영성을 만들어 한국 문화 안에서 조화로운 토착화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겨레 복음화와 한국적 수도회 창설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응답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방유룡 (方有龍)
방유룡(方有龍)은 해방 후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에 맞는 한국순교복자가족수도회를 창설한 사제이자 그리스도교 영성을 한국의 정서와 언어로 적합하게 구현한 영성가이다. 해방 후 수녀회(1946년), 성직수도회(1953년), 재속복자회(제3회, 1957년), 빨마수녀회(1962년)를 창설하였다. 가톨릭 신앙을 동양적 정서 속에 녹여낸 고유한 수도 영성을 만들어 한국 문화 안에서 조화로운 토착화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겨레 복음화와 한국적 수도회 창설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응답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