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화 신학은 서구 신학의 모방이나 답습에서 벗어나 ‘한국적 신학’을 수립하기 위하여 한국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종교 가치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신학이다. 한국적 신학, 상황화 신학이라고도 한다. 19세기 말 개척 선교사들은 토착 문화와 상황에 적응하는 선교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토착화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합주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비판을 받았다. 2000년대 들어 선교사들은 토착 신학 수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자신학화’(自神學化) 개념을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토착화 신학 역시 선교학의 일종이라는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
토착화 신학의 관심 주제인 토착화는 상황화(contextualization) 혹은 문화화(encultration)로도 설명되는데 이는 기독교 복음을 토착적 종교와 문화 상황에서 어떻게 수용, 해석, 적용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기독교 선교나 전도의 내용이 되는 복음을 규명하고 진술하기보다는 복음이 적용되는 종교 · 문화적 상황을 탐구의 내용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상황 신학’(contexual theology)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보수적이기보다는 진보적이다. 그리고 방법론에서의 토착화 신학은 서구 기독교의 교리와 역사 전통뿐 아니라 동양(한국)의 종교와 문화 전통도 신학적 사유의 대상과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동 · 서양의 종교와 철학 사상 사이의 대화를 적극 모색한다.
토착화에 대한 신학적 관심과 논의는 이미 개신교 선교 초기부터 있었다. 즉 19세기 말 내한한 개척 선교사들은 토착 교회 육성을 목표로 한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채택하여 토착 문화와 상황에 적응하는 선교를 추구하였으며, 토착 교회 개종 1세대 지도자들도 동양(한국)의 전통 종교와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노병선의 『파혹진선론』(1897)과 길선주의 『해타론』(1905), 최병헌의 『성산명경』(1911)과 『만종일련』(1923) 등과 같은 기독교 변증서들이 나왔는데, 이 책들은 동양 종교의 부족한 부분을 기독교가 완성시켜준다는 성취론적 입장이었다. 그리고 1930년대 들어 선교사와 서구 교회의 지배와 관리에서 독립하여 ‘조선적 기독교’를 수립하려는 신학적 모색이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이용도의 예수교회, 최태용의 복음교회 등으로 나타났고, 진보주의 신학자 정경옥은 ‘신학의 향토화(鄕土化)’란 개념으로 서구 신학의 토착적 해석과 적용을 시도하였다.
이런 선행 단계를 거쳐 1960년대 감리교신학대학의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 교수 등에 의해 토착화 신학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그것은 서구 신학의 번역과 소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신학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였다. 윤성범은 바르트 신학과 유교 성리학을 비교 분석한 『기독교와 한국사상』(1964), 『한국적 신학: 誠의 해석학』(1972), 『효』(1973) 등을 저술하여 한국의 전통 종교와 문화 속에 기독교적 요소가 ‘선험적’(a priori)으로 존재했다는 점을 밝히려 하였다. 유동식은 『한국종교와 기독교』(1965),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1975), 『풍류도와 한국신학』(1992) 등의 저술을 통해 한국인 고유 사상의 원류를 무교와 풍류도에서 찾고 그것을 풍류 신학으로 발전시켰다. 변선환은 기독교와 선불교 사이의 대화로 출발하여 탈 서구화 종교 해방론에 입각한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토착화 신학은 시작부터 보수적 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전경연과 이종성, 한철하, 김의환 등 장로교 신학자들은 토착화 신학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합주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비판하였고, 윤성범은 이들과 치열한 신학논쟁을 전개했다. 1980년대에 종교간 대화 신학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보수적 신학계와 기독교계로부터 집중적으로 비판과 비난을 받았고 결국 그는 1992년 자신이 속했던 감리교단의 종교재판을 받고 목사직을 박탈당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토착화 신학은 한국의 보수주의 신학계로부터 정통에서 벗어난 ‘좌경’(左傾) 신학으로 경계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그동안 토착화 신학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했던 보수적 복음주의 선교학자들 사이에서 (선교사들은) 피선교지 토착 교회 지도자들의 주체적 신학 수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자신학화’(自神學化, self-theologizing) 개념이 거론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넓은 의미에서 토착화 신학의 선교학적 적용이라 할 수 있다. 토착화 신학이 기독교를 모르는 토착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기독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 하는 선교적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토착화 신학과 선교학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토착화 신학은 해석학적 방법론으로 토착화 신학과 민중 신학과 대화를 시도한 김광식(연세대학교), ‘접목론’을 바탕으로 한국적 문화 신학을 전개한 김경재(한신대학교)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윤성범과 유동식, 변선환 등으로부터 직접 강의를 들은 제2세대 제자들(조직 신학의 박종천 · 심광섭 · 송성진, 종교 철학의 이정배 · 장왕식, 역사 신학의 이덕주 · 성백걸)이 인근 학문과 대화하며 연구 지평을 넓혀 나가고 있다.
서구 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 신학계에서 토착화 신학은 민중 신학과 함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