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파리_강화_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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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프랑스 파리에 설치한 외교부서.
파리위원부 (巴里委員部)
1919년 4월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프랑스 파리에 설치한 외교부서.
일제강점기 때,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할 독립청원서의 서명 운동과 발송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다가 체포된 독립운동가.
권상익 (權相翊)
일제강점기 때,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할 독립청원서의 서명 운동과 발송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을 제공하여 독립군기지 건설을 지원하다가 체포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파리를 거점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외교활동을 펼쳤던 대한민국 파리주재 임시정부(1919~1920).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파리대표부 (大韓民國臨時政府 駐Paris代表部)
일제강점기 파리를 거점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외교활동을 펼쳤던 대한민국 파리주재 임시정부(1919~1920).
일제강점기 때, 한성정부 평정관, 국민의회 대표, 국민대표회 부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윤해 (尹海)
일제강점기 때, 한성정부 평정관, 국민의회 대표, 국민대표회 부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에 13도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고,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내수 (李來修)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에 13도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고,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의병 및 독립의군부 회계총관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파리장서 서명운동에 가담한 의병·독립운동가.
고용진 (高龍鎭)
일제강점기 때, 의병 및 독립의군부 회계총관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파리장서 서명운동에 가담한 의병·독립운동가.
윤충하는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 및 워싱턴군축회의 청원서 작성에 참여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07년 나인영, 오기호 등이 주동이 된 을사오적 처단 거사에 적극 동참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 유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작성할 때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보내는 청원서에 태극교 대표로 참여하여 일제의 한국 병합 부당성을 설파하였다.
윤충하 (尹忠夏)
윤충하는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 및 워싱턴군축회의 청원서 작성에 참여하였던 독립운동가이다. 1907년 나인영, 오기호 등이 주동이 된 을사오적 처단 거사에 적극 동참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 유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장서를 작성할 때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2년 워싱턴군축회의에 보내는 청원서에 태극교 대표로 참여하여 일제의 한국 병합 부당성을 설파하였다.
하란사는 일제강점기 여성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신여성이다. 본명은 김란사(金蘭史)이며 이화학당 입학 후 일본과 미국에서 수학하였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학당에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고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 중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경에서 별세하였다.
하란사 (河蘭史)
하란사는 일제강점기 여성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신여성이다. 본명은 김란사(金蘭史)이며 이화학당 입학 후 일본과 미국에서 수학하였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학당에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고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 중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경에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