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패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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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서.
패강진전 (浿江鎭典)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서.
김체신은 신라 중대 말~하대 초의 관료이다. 경덕왕 때 일본에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하였고, 혜공왕 때는 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의 차관으로서 성덕대왕신종을 주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선덕왕 4년(783)에 대곡진이라고도 불린 패강진의 장관이 되었다.
김체신 (金體信)
김체신은 신라 중대 말~하대 초의 관료이다. 경덕왕 때 일본에 파견되어 외교 활동을 하였고, 혜공왕 때는 감은사성전(感恩寺成典)의 차관으로서 성덕대왕신종을 주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선덕왕 4년(783)에 대곡진이라고도 불린 패강진의 장관이 되었다.
두상대감(頭上大監)은 통일신라시대, 패강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기구인 패강진전의 장관직이다. 782년(선덕왕 3)에 급찬(級飡) 이상 사중아찬(四重阿飡)까지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며, 정원은 1명이었다. 같은 해, 본영(本營)인 대곡진에 주변의 7군과 7현을 군정적으로 통치하는 기구인 패강진전을 두면서, 그 장관으로 설치된 것이다. 두상대감은 신라에서 6두품(六頭品)이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외관직(外官職) 중 하나였다.
두상대감 (頭上大監)
두상대감(頭上大監)은 통일신라시대, 패강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기구인 패강진전의 장관직이다. 782년(선덕왕 3)에 급찬(級飡) 이상 사중아찬(四重阿飡)까지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며, 정원은 1명이었다. 같은 해, 본영(本營)인 대곡진에 주변의 7군과 7현을 군정적으로 통치하는 기구인 패강진전을 두면서, 그 장관으로 설치된 것이다. 두상대감은 신라에서 6두품(六頭品)이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외관직(外官職) 중 하나였다.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27왕비.
월경원부인 (月鏡院夫人)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27왕비.
속감전은 872년(경문왕 12)에 황룡사9층목탑을 중수할 때 공역(工役)과 관련된 왕실과의 연락사무나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였던 속관(俗官)들로 구성된 통일신라의 임시기구이다. 속감전을 구성하였던 관료들 가운데 집사시랑은 집사부의 차관으로써, 중수와 관련된 왕명의 출납과 왕실과의 각종 연락사무를 담당하였다. 내성경은 왕실 재정을 담당하였던 내성의 차관으로, 목탑의 중수에 필요한 각종 재원의 마련과 지원 사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속감전 (俗監典)
속감전은 872년(경문왕 12)에 황룡사9층목탑을 중수할 때 공역(工役)과 관련된 왕실과의 연락사무나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였던 속관(俗官)들로 구성된 통일신라의 임시기구이다. 속감전을 구성하였던 관료들 가운데 집사시랑은 집사부의 차관으로써, 중수와 관련된 왕명의 출납과 왕실과의 각종 연락사무를 담당하였다. 내성경은 왕실 재정을 담당하였던 내성의 차관으로, 목탑의 중수에 필요한 각종 재원의 마련과 지원 사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선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7대(재위: 780~785) 왕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집사부 시중과 상대등을 역임하고, 780년 김지정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반란 와중에 혜공왕이 시해되자, 김경신과 김주원 등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발해의 침략과 패강지역의 안전한 치안 유지를 위해 대곡군(북한의 황해북도 평산군)에 패강진을 설치하였다.
선덕왕 (宣德王)
선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7대(재위: 780~785) 왕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 집사부 시중과 상대등을 역임하고, 780년 김지정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반란 와중에 혜공왕이 시해되자, 김경신과 김주원 등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발해의 침략과 패강지역의 안전한 치안 유지를 위해 대곡군(북한의 황해북도 평산군)에 패강진을 설치하였다.
제감(弟監)은 삼국시대, 신라 병부 소속의 관원이자 육정, 구서당, 계금당에 설치된 지휘관이다. 관등은 대나마(10관등)에서 사지(13관등)까지의 인물이 임용되었던 것을 참고할 때, 5두품 계층의 인물이 주된 대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소속 부대의 중간급 지휘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감 (弟監)
제감(弟監)은 삼국시대, 신라 병부 소속의 관원이자 육정, 구서당, 계금당에 설치된 지휘관이다. 관등은 대나마(10관등)에서 사지(13관등)까지의 인물이 임용되었던 것을 참고할 때, 5두품 계층의 인물이 주된 대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소속 부대의 중간급 지휘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