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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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
쌍기 (雙冀)
고려 전기에,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
고려시대 과거시험관제(科擧試驗官制).
공거제 (貢擧制)
고려시대 과거시험관제(科擧試驗官制).
왕인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와니기시[和邇吉師]’라 하였고,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에는 근초고왕 때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자문』이 편찬된 시기 등을 근거로 윤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기에 태자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성립하였는데, 그 답례로 인적자원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 등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왕인 (王仁)
왕인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와니기시[和邇吉師]’라 하였고,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에는 근초고왕 때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자문』이 편찬된 시기 등을 근거로 윤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기에 태자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성립하였는데, 그 답례로 인적자원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 등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고려말 조선초에 이첨(李詹)이 지은 가전체 소설.
저생전 (楮生傳)
고려말 조선초에 이첨(李詹)이 지은 가전체 소설.
조선 후기에, 『남당집』, 『주자언론동이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 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
한원진 (韓元震)
조선 후기에, 『남당집』, 『주자언론동이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 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자의, 종부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간 (李柬)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자의, 종부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권상하 (權尙夏)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이병도는 해방 이후 『국사대관』·『한국고대사연구』·『두계잡필』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896년(고종 33)에 태어나 1989년 사망했다. 보성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였다. 『폐허』의 창간에 동참하였고,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와 촉탁 등을 역임했다. 1934년 진단학회를 창립하고 『진단학보』를 간행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민족문화추진회의 발족에 참여하여 고전의 국역과 편찬사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실증적·객관적 방법을 중시하는 실증사학을 뿌리내리게 한 역사학자로 한국근대사학의 성립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병도 (李丙燾)
이병도는 해방 이후 『국사대관』·『한국고대사연구』·『두계잡필』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896년(고종 33)에 태어나 1989년 사망했다. 보성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였다. 『폐허』의 창간에 동참하였고,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와 촉탁 등을 역임했다. 1934년 진단학회를 창립하고 『진단학보』를 간행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민족문화추진회의 발족에 참여하여 고전의 국역과 편찬사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실증적·객관적 방법을 중시하는 실증사학을 뿌리내리게 한 역사학자로 한국근대사학의 성립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일본 오사카시에 있는 유치원 및 초·중등과정의 한국학교.
오사카건국학교 (大阪建國學校)
일본 오사카시에 있는 유치원 및 초·중등과정의 한국학교.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교수·연구하고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교육기관.
전문대학 (專門大學)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교수·연구하고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교육기관.
이용범은 해방 이후 『한만교류사연구』, 『중세서양과학의 조선전래』, 『한국과학사상사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21년에 태어나 1989년에 사망했다. 랴오양상업학교와 일본 메이지학원 고등학부를 졸업하였다. 1946년 동국대학에 입학하여 중국 중심의 동양사에서 벗어나 만주와 몽골 북방민족사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각도에서 동북지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발해사와 불교교섭사 연구에 많은 논문을 남겼다. 법주사에서 천문도를 발견한 이후 우리나라 천문학사를 재검토하는 등 과학사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이루었다.
이용범 (李龍範)
이용범은 해방 이후 『한만교류사연구』, 『중세서양과학의 조선전래』, 『한국과학사상사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21년에 태어나 1989년에 사망했다. 랴오양상업학교와 일본 메이지학원 고등학부를 졸업하였다. 1946년 동국대학에 입학하여 중국 중심의 동양사에서 벗어나 만주와 몽골 북방민족사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각도에서 동북지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발해사와 불교교섭사 연구에 많은 논문을 남겼다. 법주사에서 천문도를 발견한 이후 우리나라 천문학사를 재검토하는 등 과학사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이루었다.
대한제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평론가 백철이 문학사의 배경으로 사상과 사조를 중시한 방법론으로 기술한 학술서.
조선신문학사조사 (朝鮮新文學思潮史)
대한제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평론가 백철이 문학사의 배경으로 사상과 사조를 중시한 방법론으로 기술한 학술서.
조선 후기에, 『세심요결』, 『독서전보』, 『천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채지홍 (蔡之洪)
조선 후기에, 『세심요결』, 『독서전보』, 『천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1966년에, 현대시학사에서 김광림이 창간한 범시단적인 시 전문 문예 잡지.
현대시학 (現代詩學)
1966년에, 현대시학사에서 김광림이 창간한 범시단적인 시 전문 문예 잡지.
신라시대의 관직.
한림랑 (翰林郞)
신라시대의 관직.
고려 전기에 설치되었던 시종(侍從) 관서.
연영전 (延英殿)
고려 전기에 설치되었던 시종(侍從) 관서.
윤봉구 초상은 윤봉구(1681∼1767)의 초상화이다. 201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세로 132㎝, 가로 93㎝의 큰 초상화이다. 윤봉구는 동파관을 쓰고 검은 깃이 달린 연녹색 난삼을 입고 화문석에 앉아 있다. 이 초상화 외에도 윤봉구 초상은 미국 소장본과 중앙박물관본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은 변상벽이 그린 동일한 초본을 범본으로 1750년(영조 26)경에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초본을 사용해 제작한 여러 작품을 비교해 제작 시기의 선후 관계나 이모 여부에 따른 양식의 변화를 고찰할 수 있다.
윤봉구 초상 (尹鳳九 肖像)
윤봉구 초상은 윤봉구(1681∼1767)의 초상화이다. 201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세로 132㎝, 가로 93㎝의 큰 초상화이다. 윤봉구는 동파관을 쓰고 검은 깃이 달린 연녹색 난삼을 입고 화문석에 앉아 있다. 이 초상화 외에도 윤봉구 초상은 미국 소장본과 중앙박물관본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은 변상벽이 그린 동일한 초본을 범본으로 1750년(영조 26)경에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초본을 사용해 제작한 여러 작품을 비교해 제작 시기의 선후 관계나 이모 여부에 따른 양식의 변화를 고찰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강문팔학사로 불리며 장릉참봉, 익위사세마 등을 역임하였으며, 『관봉문답』, 『관봉유집』 등을 저술한 학자.
현상벽 (玄尙璧)
조선 후기에, 강문팔학사로 불리며 장릉참봉, 익위사세마 등을 역임하였으며, 『관봉문답』, 『관봉유집』 등을 저술한 학자.
고려 전기에, 한림학사, 예부시의 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
백사유 (白思柔)
고려 전기에, 한림학사, 예부시의 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
독학학위제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단계별 시험에 합격한 독학자에게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제도이다. 평생교육의 이념을 구현하고 개인의 자아실현과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고등학교 졸업자로 대학에 출석하지 않고도 제4단계까지의 시험에 통과하면 교육부장관 명의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1990년에 시작되어 2008년부터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관련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독학을 통한 학위 취득이 쉽지 않고 취득 기간이 길다는 점이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로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학자습을 통하여 원하는 분야의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독학학위제 (獨學學位制)
독학학위제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단계별 시험에 합격한 독학자에게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제도이다. 평생교육의 이념을 구현하고 개인의 자아실현과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고등학교 졸업자로 대학에 출석하지 않고도 제4단계까지의 시험에 통과하면 교육부장관 명의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1990년에 시작되어 2008년부터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관련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독학을 통한 학위 취득이 쉽지 않고 취득 기간이 길다는 점이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로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학자습을 통하여 원하는 분야의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