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국애국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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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순희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유일한 여성 의원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여성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한국독립당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하여 부주석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부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선전연락원으로서 중국 각지에서 선무 공작을 벌이고 1946년에 귀국하였다.
방순희 (方順熙)
방순희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의 유일한 여성 의원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여성 의원으로 활약하면서 한국독립당 간부로 활동하였다.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하여 부주석으로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부에서 근무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선전연락원으로서 중국 각지에서 선무 공작을 벌이고 1946년에 귀국하였다.
1946년 4월에 발족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산하의 여성 우익단체.
독립촉성애국부인회 (獨立促成愛國婦人會)
1946년 4월에 발족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산하의 여성 우익단체.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형록 (崔亨祿)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선화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전반기 한국독립당 및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에서의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에 망명하여 흥사단에 가입하고, 1940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43년 5월 충칭에서 한국애국부인회 서무부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최선화 (崔善嬅)
최선화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전반기 한국독립당 및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에서의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에 망명하여 흥사단에 가입하고, 1940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43년 5월 충칭에서 한국애국부인회 서무부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원경은 일제강점기 황해도 재령군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여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황해도 재령군에 거주하며 대영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해 2월 28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 재령군 일대에 배포하였다. 그리고 이후 전개된 3월 9일의 재령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군경에게 체포되어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국제연합 조선협회, 여성문화협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원경 (朴源炅)
박원경은 일제강점기 황해도 재령군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여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황해도 재령군에 거주하며 대영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해 2월 28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 재령군 일대에 배포하였다. 그리고 이후 전개된 3월 9일의 재령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군경에게 체포되어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국제연합 조선협회, 여성문화협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