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일관계사료집"
검색결과 총 3건
1919년에 조직되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사료편찬기구.
사료조사편찬회 (史料調査編纂會)
1919년에 조직되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사료편찬기구.
임시사료편찬회는 1919년 7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정리·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를 정리하고 책을 편찬하여 국제연맹에 일본의 부당한 한국 강점 사실 및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고자 설립되었다. 한일관계와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일관계사료집』 전 4권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 서술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임시사료편찬회 (臨時史料編纂會)
임시사료편찬회는 1919년 7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정리·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를 정리하고 책을 편찬하여 국제연맹에 일본의 부당한 한국 강점 사실 및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고자 설립되었다. 한일관계와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일관계사료집』 전 4권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 서술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조동호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사료조사편찬부원, 독립신문, 동아일보 기자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이다. 1914년 여운형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19년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였으며, 상해판 『독립신문』의 기자로 신문제작을 위한 한글활자를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소한 후에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하여 항일 논설을 집필하였다. 1945년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제1차 건국준비위원회의 선전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조동호 (趙東祜)
조동호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사료조사편찬부원, 독립신문, 동아일보 기자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이다. 1914년 여운형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19년 『한일관계사료집』을 편찬하였으며, 상해판 『독립신문』의 기자로 신문제작을 위한 한글활자를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소한 후에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하여 항일 논설을 집필하였다. 1945년 무장투쟁을 위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제1차 건국준비위원회의 선전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