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사료편찬회는 1919년 7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정리·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를 정리하고 책을 편찬하여 국제연맹에 일본의 부당한 한국 강점 사실 및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고자 설립되었다. 한일관계와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일관계사료집』 전 4권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 서술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1919년 7월 11일 경 대한민국임시정부 내에 설치되고, 같은 해 9월 23일 『한일관계사료집(韓日關係史料集)』(전 4권)을 간행한 뒤 해산되었다.
임시정부 차원에서 독립운동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1919년 5월 12일 제4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국무위원 조완구(趙琬九)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또한 같은 해 7월 8일 내무총장 안창호가 시정방침 연설에서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의 조사 · 수집 · 편찬 및 국제연맹 제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제5회 임시의정원에서도 같은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7월 11일 임시정부는 김병조(金秉祚) 등 5인을 특별위원에 임명하여 국제연맹회제출안건작성특별위원회(國際聯盟會提出案件作成特別委員會)를 구성했고, 뒤이어 국무총리 대리 겸 내무총장인 안창호(安昌浩)를 중심으로 총재 1명, 간사 1명, 주임 1명, 위원 8명, 조역 22명의 임시사료편찬회(臨時史料編纂會)가 정식 설치되었다.
총재는 안창호, 주임은 이광수(李光洙), 간사는 김홍서(金弘敍), 위원은 김병조 · 이원익(李元益) · 장붕(張鵬) · 김한(金翰) · 김두봉(金枓奉) · 박현환(朴賢煥) · 김여제(金與濟) · 이영근(李泳根), 조역은 김명제(金明濟) · 김석황(金錫璜) · 김성봉(金成奉) · 권지룡(權址龍) · 유영국(柳榮國) · 박석홍(朴錫弘) · 박순흠(朴舜欽) · 박적옥(朴炙玉) · 박지붕(朴址朋) · 우승규(禹昇圭) · 차균상(車均詳) · 차정신(車貞信) · 정명익(鄭明翼) · 이기영(李起榮) · 이강하(李康夏) · 강현석(姜賢錫) · 김항신(金恒信) · 정혜선(鄭惠善) · 조숙경(趙淑景) · 이(李)매리 · 이봉순(李奉順) 등이었다.
임시사료편찬회는 약 50일 간의 사료 수집 · 정리 · 집필 · 인쇄를 거쳐 9월 23일 『한일관계사료집』전 4권(총 739면, 100질)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책의 내용은, 제1권은 삼국시대부터 강화도조약까지의 한일관계, 제2권은 강화도조약부터 한일합병까지, 제3권은 한일합병부터 1919년 2월까지 일본의 대한(對韓)정책, 제4권은 3 · 1운동 이후에 관한 사항을 수록하여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임시정부의 공보(公報)에 의하면, 임시사료편찬회는 책자 간행 후 해산되었는데, 기존 업무는 국무원에 이양되고, 김병조 · 이원익을 국무원사료입사사무(國務院史料立査事務) 촉탁에 임명한다고 하였으나, 관련 업무는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임시사료편찬회의 중요 기능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를 수집 · 정리 · 편찬하고, 이를 책으로 구성해 국제연맹에 제출하는 일이었다. 상해에 체류하고 있는 위원들이 사료의 수집 · 정리 및 내용 집필을 맡는 가운데 부족한 사료를 보충하기 위해 국내에 4∼5명을 특파했다. 국제연맹에 제출할 책자는 이 모임에 참석한 세계열강 대표들이 열람하는 것을 고려해 9월 이전까지 발송되어야 했으므로, 사료 수집 · 정리, 내용 집필, 등사 등의 작업은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이광수가 쓴 ‘서언’을 보면, 이 작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은 김병조 · 김두봉 · 이원익 · 이광수였다.
임시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한국 독립운동사 사료를 수집 · 정리 · 편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축적된 사료와 편찬기술이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의 간행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한국 독립운동사 서술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반면 국제연맹에 제출할 시간을 촉박하여 책자의 간행 준비기간이 매우 짧았고, 자료 수집이 원활히 진행되기 어려웠으며, 단일한 체제로 편집할 시간도 부족하였으며, 책을 간행한 뒤 임시정부 내에 상설화되지 못하고 사실상 해산되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지니기도 했다.
한편 『한일관계사료집』은 1972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 컬럼비아대학 극동도서관에서 처음 발견해 1974년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 제4권으로 활인 간행하고,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국제연맹제출(國際聯盟提出) 조일관계사료(朝日關係史料)』라는 제목으로 영인 간행하였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2005년 다시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제7권으로 영인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