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함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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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방언은 우리나라 동북구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이다. 함경도방언이라고도 하여 대체로 함경남·북도를 넣지만, 그 남쪽 경계는 일반적으로 함경남도 영흥과 정평 사이로 본다. 동북방언 중에서 중앙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고 사방이 고립되어 있는 육진 지역의 방언을 육진방언이라 한다. 동북방언은 지역에 따라 고조·저조 또는 고조·저조·상승조를 가지고 있는 성조언어이다. 어두에 /ㄹ/의 출현을 허용하는 것도 중부방언과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이 방언의 통사적 특징은 목적어 중출문이 자유롭게 쓰인다는 점이다. 이 방언의 어휘에는 중세국어 또는 근대국어 시기에 쓰이다가 사라진 어휘들이 잔존해 있는 경우가 있다.
동북방언 (東北方言)
동북방언은 우리나라 동북구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이다. 함경도방언이라고도 하여 대체로 함경남·북도를 넣지만, 그 남쪽 경계는 일반적으로 함경남도 영흥과 정평 사이로 본다. 동북방언 중에서 중앙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고 사방이 고립되어 있는 육진 지역의 방언을 육진방언이라 한다. 동북방언은 지역에 따라 고조·저조 또는 고조·저조·상승조를 가지고 있는 성조언어이다. 어두에 /ㄹ/의 출현을 허용하는 것도 중부방언과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이 방언의 통사적 특징은 목적어 중출문이 자유롭게 쓰인다는 점이다. 이 방언의 어휘에는 중세국어 또는 근대국어 시기에 쓰이다가 사라진 어휘들이 잔존해 있는 경우가 있다.
단천시는 북한의 함경남도 동해안 북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함경북도 길주군과 김책시, 서쪽은 허천군·덕성군·이원군, 북쪽은 갑산군과 양강도의 백암군·운흥군에 접하여 있고, 남쪽은 동해에 면하여 있다. 고려시대에 사용해 왔던 단주의 ‘단(端)’과 크고 작은 강·하천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자연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여 ‘천(川)’ 자를 붙였다. 1982년 8월 시로 승격되었다. 북부지역에는 매장량 37억 톤에 달하는 마그네사이트와 연·아연·인회석이 매장되어 있다. 남부 해안에 있는 단천 휴양소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단천시 (端川市)
단천시는 북한의 함경남도 동해안 북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함경북도 길주군과 김책시, 서쪽은 허천군·덕성군·이원군, 북쪽은 갑산군과 양강도의 백암군·운흥군에 접하여 있고, 남쪽은 동해에 면하여 있다. 고려시대에 사용해 왔던 단주의 ‘단(端)’과 크고 작은 강·하천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자연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여 ‘천(川)’ 자를 붙였다. 1982년 8월 시로 승격되었다. 북부지역에는 매장량 37억 톤에 달하는 마그네사이트와 연·아연·인회석이 매장되어 있다. 남부 해안에 있는 단천 휴양소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금야군은 함경남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검은 금'이라고 불리던 석탄이 많이 생산되고, 기름진 밭을 가진 고장이라는 뜻에서 금야군이라 명명하였다. 금야군은 동쪽으로는 61.5km의 해안선을 가진 동해를 접하고, 서쪽으로 요덕군, 남쪽은 고원군, 강원도 천내군, 북쪽은 정평군과 접해 있다. 북부와 서부지역이 약간 높고, 동부지역은 평탄한 평야지대로 되어 있다. 넓은 금야평야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금야군은 농업을 중심으로 수산업과 광공업이 발달하였다. 교통망으로는 평라선(평양∼나진) 철도가 통과하고, 함흥·원산·요덕으로 통하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금야군 (金野郡)
금야군은 함경남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검은 금'이라고 불리던 석탄이 많이 생산되고, 기름진 밭을 가진 고장이라는 뜻에서 금야군이라 명명하였다. 금야군은 동쪽으로는 61.5km의 해안선을 가진 동해를 접하고, 서쪽으로 요덕군, 남쪽은 고원군, 강원도 천내군, 북쪽은 정평군과 접해 있다. 북부와 서부지역이 약간 높고, 동부지역은 평탄한 평야지대로 되어 있다. 넓은 금야평야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금야군은 농업을 중심으로 수산업과 광공업이 발달하였다. 교통망으로는 평라선(평양∼나진) 철도가 통과하고, 함흥·원산·요덕으로 통하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덕성군은 함경남도 중북부 내륙에 있는 군이다. 면적 약 1,581.5㎢, 인구 10만 8600여 명(1995년 추정)이며, 1읍, 1노동자구, 23리(2002년)로 구성되어 있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 때 북청군의 4개 면을 분리해 덕성군을 신설하였다. 험준한 부전령산맥의 남사면에 자리하여 높은 산지대로 되어 있다. 중심부에 여러 천이 흐르며 그 유역에 작은 평야가 이루어져 있다.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콩·감자이다. 적철광을 비롯한 형석·금 등이 매장되어 있으며, 적철을 채굴하는 덕성광산이 있다.
덕성군 (德城郡)
덕성군은 함경남도 중북부 내륙에 있는 군이다. 면적 약 1,581.5㎢, 인구 10만 8600여 명(1995년 추정)이며, 1읍, 1노동자구, 23리(2002년)로 구성되어 있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 때 북청군의 4개 면을 분리해 덕성군을 신설하였다. 험준한 부전령산맥의 남사면에 자리하여 높은 산지대로 되어 있다. 중심부에 여러 천이 흐르며 그 유역에 작은 평야가 이루어져 있다.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콩·감자이다. 적철광을 비롯한 형석·금 등이 매장되어 있으며, 적철을 채굴하는 덕성광산이 있다.
낙원군은 함경남도의 중부 동해안에 있는 군이다. 면적은 약 176㎢이고, 인구는 6만 700명(2008년 추정)에 달한다. 본래 지명은 퇴조군이었으나, 1982년 사회주의 낙원을 뜻하는 낙원군으로 개명되었다. 저산성지대이며 소하천들이 동해 방향으로 흐른다. 동쪽보다 남쪽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다. 농업, 축산업, 수산업이 주요 산업이며, 특산물인 생복(生鰒)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신풍광산에서는 인회석, 아연 등 비철금속 광물이 채굴되고 있다. 낙원항은 중요한 어업기지이자 해상운수항으로 발전 중이다.
낙원군 (樂園郡)
낙원군은 함경남도의 중부 동해안에 있는 군이다. 면적은 약 176㎢이고, 인구는 6만 700명(2008년 추정)에 달한다. 본래 지명은 퇴조군이었으나, 1982년 사회주의 낙원을 뜻하는 낙원군으로 개명되었다. 저산성지대이며 소하천들이 동해 방향으로 흐른다. 동쪽보다 남쪽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다. 농업, 축산업, 수산업이 주요 산업이며, 특산물인 생복(生鰒)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신풍광산에서는 인회석, 아연 등 비철금속 광물이 채굴되고 있다. 낙원항은 중요한 어업기지이자 해상운수항으로 발전 중이다.
부전군은 함경남도 북서부에 있는 군이다. 면적은 1,773.8㎢, 인구는 3만 6000여 명이며(1996년 추정), 1읍 2노동자구 14리로 구성되어 있다(2002년). 부전은 부전령(赴戰嶺)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싸움에 나선다’는 뜻이다. 1952년 12월 장진군의 동하면 일부와 신흥군의 동산면이 통합되어 신설되었다. 부전군은 개마고원의 일부로 부전고원을 이루고 있고, 군 전체면적의 90.7%가 산림이다. 농경지는 군 면적의 5%에 불과하며, 고지대 농업과 축산업이 발전하였다. 조선팔경의 하나인 부전호, 울창한 산림과 야생꽃으로 유명한 명승지인 부전고원이 있다.
부전군 (赴戰郡)
부전군은 함경남도 북서부에 있는 군이다. 면적은 1,773.8㎢, 인구는 3만 6000여 명이며(1996년 추정), 1읍 2노동자구 14리로 구성되어 있다(2002년). 부전은 부전령(赴戰嶺)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싸움에 나선다’는 뜻이다. 1952년 12월 장진군의 동하면 일부와 신흥군의 동산면이 통합되어 신설되었다. 부전군은 개마고원의 일부로 부전고원을 이루고 있고, 군 전체면적의 90.7%가 산림이다. 농경지는 군 면적의 5%에 불과하며, 고지대 농업과 축산업이 발전하였다. 조선팔경의 하나인 부전호, 울창한 산림과 야생꽃으로 유명한 명승지인 부전고원이 있다.
『덕원부읍지』는 1899년 함경남도 덕원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9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덕원부는 조선 왕실 선조들의 터전이었던 곳으로, 고적 항목에서 이와 관련한 유적들을 기록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 송시열의 유배 장소로서 관련 유적에 대해서도 수록하였다. 이 읍지는 1899년 당시 덕원부의 상황과 더불어 대한제국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이다.
덕원부읍지 (德源府邑誌)
『덕원부읍지』는 1899년 함경남도 덕원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9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덕원부는 조선 왕실 선조들의 터전이었던 곳으로, 고적 항목에서 이와 관련한 유적들을 기록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 송시열의 유배 장소로서 관련 유적에 대해서도 수록하였다. 이 읍지는 1899년 당시 덕원부의 상황과 더불어 대한제국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이다.
『북청군읍지』는 1899년 함경남도 북청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14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수록하였다. 1890년대 제도 개혁에 따른 지역의 변화상을 기재하였는데, 창고와 봉수, 파발 등 지역에 존재하였던 시설들을 열거하면서 폐지되었다는 사실 또한 밝혔다. 소학교가 설치되었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1899년 당시 북청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북청군읍지 (北靑郡邑誌)
『북청군읍지』는 1899년 함경남도 북청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14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수록하였다. 1890년대 제도 개혁에 따른 지역의 변화상을 기재하였는데, 창고와 봉수, 파발 등 지역에 존재하였던 시설들을 열거하면서 폐지되었다는 사실 또한 밝혔다. 소학교가 설치되었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1899년 당시 북청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