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함안_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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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엽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 장날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이 합세해 출동한 일본군과 대치하고 투석전을 벌이면서 주재소를 파괴하던 중 일본 군경의 무차별 발포가 이어졌다. 선두에 서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박상엽은 일본 군경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상엽 (朴尙燁)
박상엽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 장날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이 합세해 출동한 일본군과 대치하고 투석전을 벌이면서 주재소를 파괴하던 중 일본 군경의 무차별 발포가 이어졌다. 선두에 서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박상엽은 일본 군경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원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군북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군북 경찰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히 대항하다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원개 (朴元介)
박원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군북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군북 경찰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히 대항하다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서한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에서 일어난 3 · 1 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 함안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함안읍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함안경찰서와 주재소로 행진하였고, 함안군청 · 등기소 · 우편국 등을 습격하였으며, 일본 수비대의 무력 진압에 극력 저항하였다. 시위 참여 인사 색출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서한종 (徐漢鍾)
서한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에서 일어난 3 · 1 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 함안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함안읍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함안경찰서와 주재소로 행진하였고, 함안군청 · 등기소 · 우편국 등을 습격하였으며, 일본 수비대의 무력 진압에 극력 저항하였다. 시위 참여 인사 색출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이원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군북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북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 · 준비하였다. 3월 20일 군북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장을 행진하다 일제 헌병과 투석전을 벌였고,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원필 (李元弼)
이원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군북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북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 · 준비하였다. 3월 20일 군북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장을 행진하다 일제 헌병과 투석전을 벌였고,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