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군북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북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 · 준비하였다. 3월 20일 군북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장을 행진하다 일제 헌병과 투석전을 벌였고,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출신으로, 1884년 4월 30일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시장에서 순국하였다.
3 · 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외사촌 이경흠(李卿欽)으로부터 서울의 정세와 함께 3월 19일 함안읍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에 함안읍내 만세시위와 연계하여 군북에서도 시위를 벌이기로 하고, 곧바로 신창학교(新昌學校)의 교사 및 학생들과 함께 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19일 함안읍에서 전개된 시위가 일본군의 탄압으로 해산된 후, 함안읍 의거에 참가하였던 사람들이 군북으로 넘어와 합류하였다.
3월 20일 오후 1시경 군북시장에는 3,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신창학교 학생들의 만세 고창을 신호로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원필(李元弼)은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나눠주는 한편,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행진하였다. 일제 헌병이 파견되어 시위대에게 잉크와 먹물로 표시를 하자, 격분한 군중들과 함께 돌을 던지며 육탄전을 벌이다가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