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여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서 일어난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0일 포천군 신북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 · 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만세시위를 권유하는 사발통문을 접하고 동료들과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시위 군중을 이끌다 매복해 있던 일제 헌병의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다.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출신으로, 1879년 태어났고, 1919년 3월 30일 순국하였다.
1919년 3 · 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3월 29일 포천군 신북면에는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는 사발통문(沙鉢通文)이 돌았다. 사발통문의 내용은 “내일 신북면사무소 앞에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자 하니 여러 사람과 같이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순식간에 마을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이영여(李榮汝) 또한 일찍이 이 내용을 접하고 서성달(徐成達), 이치상(李致相), 성성문(成聖文), 윤충렬(尹忠烈) 등과 여러 차례 비밀 회합을 가지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30일 신북면사무소 앞에는 인근 일동면, 이동면, 영중면 등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군중 가운데 누군가 “여러분, 우리나라는 독립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이 우리를 원조하고 있소.”라며 연설을 하자, 여기저기서 만세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어 이영여는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군중들을 이끌며 포천읍을 향해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가 신북면 무루산 고개마루턱에 이르렀을 때 매복해 있던 일제 헌병이 총격을 가하였다. 이영여는 군중과 함께 돌을 던지며 항전하였지만, 결국 가슴과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