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이현설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창수면 신리 구장으로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창수주재소를 점거 파괴한 후, 귀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의 구장으로서, 창수동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3월 19일 이현설(李鉉卨)은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창수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4시경, 주재소 앞에는 인근 마을 주민까지 약 2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선두에서 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를 점거한 후, 청사(廳舍) · 객사(客舍) 및 기숙사 등을 파괴하고 공문서를 훼기(毁棄)하였다. 뿐만 아니라 비치된 대검, 총, 기타 집기까지 완전히 파괴하였다. 저녁 7시까지 시위를 계속한 후 군중들과 함께 귀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損壞),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52년 5월 2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신문 · 잡지
- 『매일신보』(1919. 5. 19.)
- 『매일신보』(1919. 3. 25.)
판결문
- 「판결문」(대구지방법원, 1919. 6. 5.)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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