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이유주는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3일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용정 서전평야에서 한국인 학교 학생들과 동포들이 모여 ‘3 · 1운동 축하식’을 거행하고 만세시위를 하였는데, 이유주는 군중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던 중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간도 용정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3월 13일 용정 서전평야(瑞甸平野)에서는 ‘3 · 1운동 축하식’이 거행되었다. 명동학교, 정동학교 등 인근 12개의 한국인 학교 학생들은 물론 용정 시내의 동포들이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모두 이곳에 집결하였다. 대회장 김영학(金永學)의 독립선언포고문 낭독으로 축하식을 겸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때 이유주(李裕周)는 약 3만여 명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일본 영사관에서 파견한 사복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날 시위에서만 총 17명이 순국하였고, 3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유해는 3월 17일 용정에서 남쪽으로 10리 떨어진 허청리(虛淸里) 언덕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독립유공자공훈록』 9(국가보훈처, 1991)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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