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양평군 양근리 시장에 도착하여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군중에게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보안법」 위반 협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26년 1월 24일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24일, 독립선언서와 ‘대한독립회(大韓獨立會)’ 명의로 된 격문 수십 장을 가지고 서울을 출발하여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 도착하였다. 이날은 양근리 장날로 1,000여 명의 장꾼들이 시장에 모여 있었다.
시장 근처 큰길가에 자리 잡고, “조선 민족은 이 기회를 틈타 일본 제국의 굴레를 벗어나 독립할 수 있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면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격문 수십 장을 군중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고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를 고창하였다.
오후 2시가 넘어섰을 때 일제 헌병이 나타나 「보안법」 위반 혐의로 양평 헌병 분견소(分遣所)로 강제 연행하였는데, 이에 격분한 군중들이 헌병 분견소 앞에 모여들어 체포자를 석방하라고 항의하기도 하였다.
1919년 7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8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만기 출소한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26년 1월 24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