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합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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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릉(驪州英陵)은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조선 제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1446년 헌릉의 서쪽에 돌방과 병풍석을 갖추어 건립되었으며, 『국조오례의』 「흉례」의 치장조에 따라 조선 석실 제도의 모범이 되었으나, 1469에 여주로 천릉하면서 광릉의 제도에 따라 삼물회(황토, 고운모래, 석회)로 회격현궁을 만들고 난간석만을 둘렀다. 왕이 살아 있을때, 왕후의 국장을 위하여 산릉을 조성하면서 추후에 안치될 왕의 수실을 미리 만들었던 유일한 사례이다.
여주 영릉 (驪州 英陵)
여주영릉(驪州英陵)은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조선 제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1446년 헌릉의 서쪽에 돌방과 병풍석을 갖추어 건립되었으며, 『국조오례의』 「흉례」의 치장조에 따라 조선 석실 제도의 모범이 되었으나, 1469에 여주로 천릉하면서 광릉의 제도에 따라 삼물회(황토, 고운모래, 석회)로 회격현궁을 만들고 난간석만을 둘렀다. 왕이 살아 있을때, 왕후의 국장을 위하여 산릉을 조성하면서 추후에 안치될 왕의 수실을 미리 만들었던 유일한 사례이다.
현릉(顯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신혜왕후 유씨의 합장릉이다. 개성특별시 서쪽 만수산 남록에 있으며, 북한 국보급유적이다. 1992년 태조 현릉의 널방을 발굴하여 벽화를 발견하고,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현재 개성특별시 고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년 태조 현릉을 방문한 김일성의 지시로 1994년 태조 현릉을 헐고 왕건왕릉을 개건하여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현릉 (顯陵)
현릉(顯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신혜왕후 유씨의 합장릉이다. 개성특별시 서쪽 만수산 남록에 있으며, 북한 국보급유적이다. 1992년 태조 현릉의 널방을 발굴하여 벽화를 발견하고, 부장품들이 출토되어 현재 개성특별시 고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2년 태조 현릉을 방문한 김일성의 지시로 1994년 태조 현릉을 헐고 왕건왕릉을 개건하여 원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헌릉(憲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삼거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4대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합장릉이다. 광종은 975년 5월, 51세의 나이로 사후 송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헌릉에 안장되었다. 현재 헌릉은 매봉 뒤 동쪽 골짜기의 높지 않은 언덕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이다. 고려시대에 헌릉은 산직당상 4명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리가 소홀하였지만, 1662년에도 정자각이나 석물이 유존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사를 통해 능제와 구조 및 석물이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상당수 석물들이 유실되어 남은 것이 많지 않은 상태이다.
헌릉 (憲陵)
헌릉(憲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삼거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4대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합장릉이다. 광종은 975년 5월, 51세의 나이로 사후 송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헌릉에 안장되었다. 현재 헌릉은 매봉 뒤 동쪽 골짜기의 높지 않은 언덕에 있으며 북한 보존급유적이다. 고려시대에 헌릉은 산직당상 4명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리가 소홀하였지만, 1662년에도 정자각이나 석물이 유존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사를 통해 능제와 구조 및 석물이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상당수 석물들이 유실되어 남은 것이 많지 않은 상태이다.
홍릉(洪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왼쪽에 순종의 유릉이 조성되어 홍유릉이라고도 불리며,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성황후의 첫 능역은 동구릉 안으로 정하고 숙릉이라 하였으나, 1897년에 청량리에 재조성하고 능호를 홍릉이라 변경하였다. 1919년에 금곡에 고종을 국장하면서 명성황후를 다시 옮겨와 합장릉으로 조성하고 홍릉이라 하였다. 대한제국기에 황제릉의 격식을 갖추었다.
홍릉 (洪陵)
홍릉(洪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왼쪽에 순종의 유릉이 조성되어 홍유릉이라고도 불리며,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성황후의 첫 능역은 동구릉 안으로 정하고 숙릉이라 하였으나, 1897년에 청량리에 재조성하고 능호를 홍릉이라 변경하였다. 1919년에 금곡에 고종을 국장하면서 명성황후를 다시 옮겨와 합장릉으로 조성하고 홍릉이라 하였다. 대한제국기에 황제릉의 격식을 갖추었다.
숭릉(崇陵)은 조선 제18대 국왕인 현종과 명성왕후 청풍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1674년에 조성한 현종 숭릉의 돌거리는 효종의 옛 영릉 돌거리를 재사용하였으며, 이는 조선왕릉 중 돌거리 재사용의 첫 사례이다. 숭릉 정자각은 팔작지붕의 8칸 건물로서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숭릉은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숭릉 (崇陵)
숭릉(崇陵)은 조선 제18대 국왕인 현종과 명성왕후 청풍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1674년에 조성한 현종 숭릉의 돌거리는 효종의 옛 영릉 돌거리를 재사용하였으며, 이는 조선왕릉 중 돌거리 재사용의 첫 사례이다. 숭릉 정자각은 팔작지붕의 8칸 건물로서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숭릉은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안릉(安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 목조의 비 효공왕후 평창이씨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이라고도 한다. 안릉은 경흥부성 남쪽 덕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위치로 천릉하였고, 쌍릉으로 조성하면서 왕릉에 준해 돌거리를 갖추었다. 안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사(加平社)에 자리한다.
안릉 (安陵)
안릉(安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 목조의 비 효공왕후 평창이씨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이라고도 한다. 안릉은 경흥부성 남쪽 덕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위치로 천릉하였고, 쌍릉으로 조성하면서 왕릉에 준해 돌거리를 갖추었다. 안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사(加平社)에 자리한다.
파주 장릉(坡州 長陵)은 조선 제16대 국왕인 인조와 인열왕후 청주한씨의 합장 단릉이다. 처음에는 파주 북운천리에 조성되었으나 1731년 지금의 자리로 천릉되었다. 이때 쌍릉에서 단릉으로 바뀌어 병풍석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다른 돌거리들은 대부분 옮겨서 사용하였다. 1970년 5월 26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파주 장릉 (坡州 長陵)
파주 장릉(坡州 長陵)은 조선 제16대 국왕인 인조와 인열왕후 청주한씨의 합장 단릉이다. 처음에는 파주 북운천리에 조성되었으나 1731년 지금의 자리로 천릉되었다. 이때 쌍릉에서 단릉으로 바뀌어 병풍석을 새로 제작하였으며, 다른 돌거리들은 대부분 옮겨서 사용하였다. 1970년 5월 26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
유릉 (裕陵)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
인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동쪽에 있는 고려 전기 제13대 왕 선종과 사숙태후 이씨의 합장릉이다. 선종은 1094년(선종 11) 5월 임진일에 연영전에서 사망하였고 빈소는 선덕전이었다. 이후 장례는 22일 뒤인 5월 갑인에 도성의 동쪽에 능침을 조성하였다. 정비인 사숙태후 이씨가 1107년(예종 2)에 사망한 후 합장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수직군을 두어 왕릉을 관리하였으나 무신의 난 이후 관리 소홀로 위치를 잃어버렸고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여서 현재 그 존재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인릉 (仁陵)
인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동쪽에 있는 고려 전기 제13대 왕 선종과 사숙태후 이씨의 합장릉이다. 선종은 1094년(선종 11) 5월 임진일에 연영전에서 사망하였고 빈소는 선덕전이었다. 이후 장례는 22일 뒤인 5월 갑인에 도성의 동쪽에 능침을 조성하였다. 정비인 사숙태후 이씨가 1107년(예종 2)에 사망한 후 합장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수직군을 두어 왕릉을 관리하였으나 무신의 난 이후 관리 소홀로 위치를 잃어버렸고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여서 현재 그 존재는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