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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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에 있는 개항기 의병장 김도현이 축조한 성곽. 산성.
검산성 (劒山城)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에 있는 개항기 의병장 김도현이 축조한 성곽. 산성.
신흥학우단은 1913년 5월 만주에서 신흥강습소와 연계되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만주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서 창단되어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본부를 두었다. 처음에는 강토를 회복한다는 ’다물단(多勿團)‘으로 하였다가, 신흥학우단[혹은 신흥교우단(新興校友團)]으로 불렸다. 신흥강습소 교직원과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한 이 단체는 1910년대 만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었다.
신흥학우단 (新興學友團)
신흥학우단은 1913년 5월 만주에서 신흥강습소와 연계되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만주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서 창단되어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 본부를 두었다. 처음에는 강토를 회복한다는 ’다물단(多勿團)‘으로 하였다가, 신흥학우단[혹은 신흥교우단(新興校友團)]으로 불렸다. 신흥강습소 교직원과 학생을 중심으로 결성한 이 단체는 1910년대 만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핵심 조직이었다.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세기와 더불어 (世紀와 더불어)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1942년 장덕수(張德秀)가 주도하여 만든 독립운동 비밀결사 단체.
조선독립청년당 (朝鮮獨立靑年黨)
1942년 장덕수(張德秀)가 주도하여 만든 독립운동 비밀결사 단체.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거세게 저항한 혐의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전중진 (田中鎭)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에 거세게 저항한 혐의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1907년 7월 하와이 마우이섬(Maui)의 가히기아 농장에서 조직한 국권회복운동단체.
국민단합회 (國民團合會)
1907년 7월 하와이 마우이섬(Maui)의 가히기아 농장에서 조직한 국권회복운동단체.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길수 (韓吉洙)
한길수는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미국방공작봉사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경기도 장단 출생으로 1905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이주해 어린 시절부터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1919년 호놀룰루에 있는 하와이방위군에 입대하였으며, 제대 후 하와이의 구세군에 가입하여 한인구세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이후 한길수는 하와이 내 일본인의 위협성을 고발하는 강력한 반일운동을 펼쳤다. 1938년 중한민중동맹단의 대표로 미국 본토에서 일본의 팽창위협과 전쟁음모를 폭로하는 등 활발한 선전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