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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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오성근과 선교사 헐버트가 한국인의 문명화와 계몽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한국사교과서·편년체·순한글·사찬본.
대한역사 (大韓歷史)
1908년 오성근과 선교사 헐버트가 한국인의 문명화와 계몽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한국사교과서·편년체·순한글·사찬본.
『사민필지』는 1890년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ulbert, H. B)가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세계 지리 교과서이다. 호머 헐버트는 1886년 조선의 초청으로 육영공원 교사로 취임한 후 육영공원의 학원(學員)들에게 세계의 지리와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이 교과서를 순한글로 간행하였다. 이후 개정본, 3판본 등이 간행되었고, 초판본은 한문본으로 번역되어 활용되었다.
사민필지 (士民必知)
『사민필지』는 1890년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ulbert, H. B)가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세계 지리 교과서이다. 호머 헐버트는 1886년 조선의 초청으로 육영공원 교사로 취임한 후 육영공원의 학원(學員)들에게 세계의 지리와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이 교과서를 순한글로 간행하였다. 이후 개정본, 3판본 등이 간행되었고, 초판본은 한문본으로 번역되어 활용되었다.
조선후기 문신 윤기진이 조선사에 관해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
대동기년 (大東紀年)
조선후기 문신 윤기진이 조선사에 관해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
『코리아 리뷰』는 1901년 선교사 헐버트가 주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기 위하여 영문으로 발행한 월간 잡지이다. 『코리안 리포지터리』를 계승한 잡지이다. 1901년 1월부터 1906년 12월까지 총 72호가 발간되었다. 한국의 역사·문화·정치·종교·언어·문학 등에 관한 글을 통해 한국을 소개하였다. 헐버트는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 이후 일본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종종 게재하였다. 1906년 12월호를 끝으로 예고 없이 폐간되었다. 한국학 연구의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민족운동사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자료이다.
코리아 리뷰 (Korea Review)
『코리아 리뷰』는 1901년 선교사 헐버트가 주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기 위하여 영문으로 발행한 월간 잡지이다. 『코리안 리포지터리』를 계승한 잡지이다. 1901년 1월부터 1906년 12월까지 총 72호가 발간되었다. 한국의 역사·문화·정치·종교·언어·문학 등에 관한 글을 통해 한국을 소개하였다. 헐버트는 러일전쟁이 끝난 1905년 이후 일본의 침략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종종 게재하였다. 1906년 12월호를 끝으로 예고 없이 폐간되었다. 한국학 연구의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민족운동사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자료이다.
『코리안 리포지터리』는 1892년 미국의 북감리회 선교사 올링거 부부가 발행한 영문 잡지이다. 한국 최초의 영문 잡지로서, 선교사들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에 대한 다양한 기사가 실려 있다. 올링거가 싱가포르로 떠나자 휴간되었다가 1895년 복간되었다. 1898년 12월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1권 분량은 40쪽 정도였고, A5판보다 약간 작은 판형(140㎝×20.5㎝)이었다. 이후 선교사들이 발간하는 영문 잡지의 전통은 『코리아 리뷰』로 계승되었다. 1890년대 외국인들의 한국 인식을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코리안 리포지터리 (Korean Repository)
『코리안 리포지터리』는 1892년 미국의 북감리회 선교사 올링거 부부가 발행한 영문 잡지이다. 한국 최초의 영문 잡지로서, 선교사들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에 대한 다양한 기사가 실려 있다. 올링거가 싱가포르로 떠나자 휴간되었다가 1895년 복간되었다. 1898년 12월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1권 분량은 40쪽 정도였고, A5판보다 약간 작은 판형(140㎝×20.5㎝)이었다. 이후 선교사들이 발간하는 영문 잡지의 전통은 『코리아 리뷰』로 계승되었다. 1890년대 외국인들의 한국 인식을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