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화백회의"
검색결과 총 8건
남당은 신라와 백제의 정청(政廳)이다. 마을의 원시적인 집회소에서 기원하였는데, 연맹왕국에서는 그 성격이 바뀌었다. 임금과 신하들의 좌석을 구별하여 왕궐(王?)과 신궐(臣?)이 있었다. 왕이 주석(主席)으로서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그 밑에 신하들이 서열에 따라 정렬하였다. 점차 국가의 정무가 복잡해지고 실무와 행정기능이 분리되면서 군신회의·회견·의식을 행하는 기관으로 변하였다. 신라에서는 화백회의가 개최되는 장소가 되었다. 고려시대의 도병마사와 조선시대의 비변사와 같은 합좌기관으로 변형, 발전하였다.
남당 (南堂)
남당은 신라와 백제의 정청(政廳)이다. 마을의 원시적인 집회소에서 기원하였는데, 연맹왕국에서는 그 성격이 바뀌었다. 임금과 신하들의 좌석을 구별하여 왕궐(王?)과 신궐(臣?)이 있었다. 왕이 주석(主席)으로서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그 밑에 신하들이 서열에 따라 정렬하였다. 점차 국가의 정무가 복잡해지고 실무와 행정기능이 분리되면서 군신회의·회견·의식을 행하는 기관으로 변하였다. 신라에서는 화백회의가 개최되는 장소가 되었다. 고려시대의 도병마사와 조선시대의 비변사와 같은 합좌기관으로 변형, 발전하였다.
대등(大等)은 신라 중고기(中古期)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신료 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진흥왕 대 여러 금석문에서 그 존재가 나타나며, 당시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등, 전대등, 사대등(仕大等) 등은 대등으로부터 분화된 관직명이다.
대등 (大等)
대등(大等)은 신라 중고기(中古期)를 중심으로 확인되는 신료 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진흥왕 대 여러 금석문에서 그 존재가 나타나며, 당시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등, 전대등, 사대등(仕大等) 등은 대등으로부터 분화된 관직명이다.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장군, 상대등, 섭정왕 등을 역임한 귀족. 대신.
알천 (閼川)
삼국시대 신라의 대장군, 상대등, 섭정왕 등을 역임한 귀족. 대신.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비담의 난 (毗曇의 亂)
비담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재위 마지막 해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이다. 비담은 645년(선덕여왕 14)에 귀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에 올라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이다. 1년 가량 뒤에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선덕여왕을 옹위하던 김유신·김춘추 편의 군사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패하였다. 이로써 선덕여왕에서 진덕여왕으로 이어지는 성골 왕권을 견제하려던 귀족 세력은 후퇴하고 김유신·김춘추 등 율령국가를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해 장차 무열왕계의 전제 왕조가 성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상대등은 신라시대의 최고 관직이다. 상신(上臣)이라고도 한다. 531년에 법흥왕이 처음 설치하였다. 대등(大等)으로 구성된 귀족회의의 주재자로서 신라 귀족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진골 중에서도 이찬(伊飡)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며 병마사(兵馬事)를 제외한 국사(國事)를 전담하였다. 국왕 중심의 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귀족세력을 관료화하여 일원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행정개편의 일환으로 설치된 측면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종신직(終身職)이었으나 국왕이 교체될 때 상대등도 교체되었다. 『삼국사기』에는 43명의 상대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상대등 (上大等)
상대등은 신라시대의 최고 관직이다. 상신(上臣)이라고도 한다. 531년에 법흥왕이 처음 설치하였다. 대등(大等)으로 구성된 귀족회의의 주재자로서 신라 귀족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진골 중에서도 이찬(伊飡)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며 병마사(兵馬事)를 제외한 국사(國事)를 전담하였다. 국왕 중심의 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귀족세력을 관료화하여 일원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행정개편의 일환으로 설치된 측면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종신직(終身職)이었으나 국왕이 교체될 때 상대등도 교체되었다. 『삼국사기』에는 43명의 상대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을 역임한 귀족.
염장 (廉長)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을 역임한 귀족.
신라의 제25대(재위: 576년~579년) 왕.
진지왕 (眞智王)
신라의 제25대(재위: 576년~579년)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