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화서학파"
검색결과 총 9건
개항기 『척양록』, 『능언』 등을 저술한 학자. 위정척사운동가.
유기일 (柳基一)
개항기 『척양록』, 『능언』 등을 저술한 학자. 위정척사운동가.
『소의신편』은 1902년 유인석과 그와 함께 창의한 문도들의 격문 등 의병관계자료를 수록한 의병록이다. 목활자본으로 『소의신편』 8권 4책, 『소의속편(昭義續編)』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인석은 서간도에 머물면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유인석을 따라간 김화식이 항일투쟁과 위정척사의 명분과 의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편찬하였다. 이후 간행할 때 22편의 유인석의 글을 추가하고 서한, 추모문, 어록 등을 수록하여 『소의속편』을 편찬하였다. 화서학파의 학문과 행적에 대해 기록되어 있어서 위정척사사상의 전개와 의병운동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소의신편 (昭義新編)
『소의신편』은 1902년 유인석과 그와 함께 창의한 문도들의 격문 등 의병관계자료를 수록한 의병록이다. 목활자본으로 『소의신편』 8권 4책, 『소의속편(昭義續編)』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인석은 서간도에 머물면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유인석을 따라간 김화식이 항일투쟁과 위정척사의 명분과 의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편찬하였다. 이후 간행할 때 22편의 유인석의 글을 추가하고 서한, 추모문, 어록 등을 수록하여 『소의속편』을 편찬하였다. 화서학파의 학문과 행적에 대해 기록되어 있어서 위정척사사상의 전개와 의병운동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대한제국기 때,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창의군에서 도총재로 활동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유인석 (柳麟錫)
대한제국기 때,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창의군에서 도총재로 활동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조선 후기에, 이항로의 학설을 따르는 화서학파로 활동하였으며, 유인석의 의병운동을 가까이서 뒷받침해주었던 학자.
유중악 (柳重岳)
조선 후기에, 이항로의 학설을 따르는 화서학파로 활동하였으며, 유인석의 의병운동을 가까이서 뒷받침해주었던 학자.
1895년 유인석과 그 일문이 자양서사에서 향음례(鄕飮禮)를 거행하면서 그 내용을 기록한 의례서.
장담강록 (長潭講錄)
1895년 유인석과 그 일문이 자양서사에서 향음례(鄕飮禮)를 거행하면서 그 내용을 기록한 의례서.
청풍김씨 가문의 어느 조부가 14살 손자를 위하여 1872년에 저술한 교훈서.
청성가전 (淸城家傳)
청풍김씨 가문의 어느 조부가 14살 손자를 위하여 1872년에 저술한 교훈서.
향약단(鄕約團)은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망명 유림들이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화서학파(華西學派) 출신의 유림들이 조직하였으며, 전통적인 향약(鄕約) 활동과 무장투쟁단체의 성격을 지녔다. 정치적으로는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주장하였으며, 이후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향약단 (鄕約團)
향약단(鄕約團)은 1919년 서간도(西間島)에서 망명 유림들이 조직한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화서학파(華西學派) 출신의 유림들이 조직하였으며, 전통적인 향약(鄕約) 활동과 무장투쟁단체의 성격을 지녔다. 정치적으로는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주장하였으며, 이후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개항기 때, 개항에 반대하는 소를 올리는 등 화서학파의 위정척사운동에서 활동한 학자.
홍재구 (洪在龜)
개항기 때, 개항에 반대하는 소를 올리는 등 화서학파의 위정척사운동에서 활동한 학자.
윤석봉은 개항기~대한제국기에 화서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홍주의병에 참여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김평묵과 유중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0년 충청남도로 이거하여 서천, 보령 일대에서 향학을 일으켰으며, 집성당을 세워 위정척사에 앞장섰다. 1906년 홍주의병에 참여하였고, 이로 인해 일본군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2개월간의 의병 활동 경험을 정리하여 『홍옥경부양처합기 병오』로 남겼다. 201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윤석봉 (尹錫鳳)
윤석봉은 개항기~대한제국기에 화서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홍주의병에 참여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김평묵과 유중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0년 충청남도로 이거하여 서천, 보령 일대에서 향학을 일으켰으며, 집성당을 세워 위정척사에 앞장섰다. 1906년 홍주의병에 참여하였고, 이로 인해 일본군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2개월간의 의병 활동 경험을 정리하여 『홍옥경부양처합기 병오』로 남겼다. 201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