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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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북도는 한반도 북부지방의 서남부에 있는 도이다. 도의 동쪽으로는 강원도, 서쪽으로는 황해남도와 남포시, 남쪽으로는 황해남도와 경기도, 북쪽으로는 평양시 및 평안남도와 경계를 이룬다. 1395년에 풍천과 해주의 지명을 따서 풍해도로 불렸다. 1417년에 황주와 해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황해도로 개칭했다. 1954년 황해도를 두 개로 나누면서 황해북도로 부르게 되었다. 도 소재지 사리원은 황해북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경의선에서 황해청년선이 분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풍부한 부존자원을 가지고 있어 공업이 발달했다.
황해북도 (黃海北道)
황해북도는 한반도 북부지방의 서남부에 있는 도이다. 도의 동쪽으로는 강원도, 서쪽으로는 황해남도와 남포시, 남쪽으로는 황해남도와 경기도, 북쪽으로는 평양시 및 평안남도와 경계를 이룬다. 1395년에 풍천과 해주의 지명을 따서 풍해도로 불렸다. 1417년에 황주와 해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황해도로 개칭했다. 1954년 황해도를 두 개로 나누면서 황해북도로 부르게 되었다. 도 소재지 사리원은 황해북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경의선에서 황해청년선이 분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풍부한 부존자원을 가지고 있어 공업이 발달했다.
조선흥업주식회사는 1904년 한국에서 소작제 대농장 경영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본인 지주회사이다. 1904년 9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주도로 설립되었으며, 전국에 6개의 농장 관리소를 두었는데, 경지 면적은 1만 7300여 정보, 소작인은 1만 6500여 명에 달하였다. 조선흥업주식회사는 일본인 지주 자본 중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제외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최대 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회사였다.
조선흥업주식회사 (朝鮮興業株式會社)
조선흥업주식회사는 1904년 한국에서 소작제 대농장 경영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본인 지주회사이다. 1904년 9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주도로 설립되었으며, 전국에 6개의 농장 관리소를 두었는데, 경지 면적은 1만 7300여 정보, 소작인은 1만 6500여 명에 달하였다. 조선흥업주식회사는 일본인 지주 자본 중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제외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최대 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회사였다.
고려 후기에, 진현관직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약시 (金若時)
고려 후기에, 진현관직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황해도 봉산 지역의 옛 지명.
봉주 (鳳州)
황해도 봉산 지역의 옛 지명.
조선후기 황해병사, 황주목사, 평안도병사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유효걸 (柳孝傑)
조선후기 황해병사, 황주목사, 평안도병사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평안남도 용강 지역의 옛 지명.
삼화 (三和)
평안남도 용강 지역의 옛 지명.
평안남도 중화 지역의 옛 지명.
상원 (祥原)
평안남도 중화 지역의 옛 지명.
고려후기 무신정변과 관련된 무신.
김준거 (金俊据)
고려후기 무신정변과 관련된 무신.
고려시대에 농우(農牛)와 농기(農器)를 징수하였던 임시직.
농무별감 (農務別監)
고려시대에 농우(農牛)와 농기(農器)를 징수하였던 임시직.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24왕비.
소황주원부인 (小黃州院夫人)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24왕비.
고려시대 절도사에 소속된 12군(軍)의 하나.
천덕군 (天德軍)
고려시대 절도사에 소속된 12군(軍)의 하나.
『황주읍지』는 1899년 황해도 황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황주군의 채색 지도를 실었다. 특히 황해도의 중심지로서 교통과 국방의 요지에 위치한 황주군의 지역적 특색을 많이 반영하였는데, 그 기록이 상세하다. 반면 인물 관련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다.
황주읍지 (黃州邑誌)
『황주읍지』는 1899년 황해도 황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황주군의 채색 지도를 실었다. 특히 황해도의 중심지로서 교통과 국방의 요지에 위치한 황주군의 지역적 특색을 많이 반영하였는데, 그 기록이 상세하다. 반면 인물 관련 기록은 상대적으로 적다.
최석길은 일제강점기,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일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간부인 김성준, 황기타와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였고, 3월 2일 성남리 시장에서 공약 3장에 대한 연설을 한 후, 천도교인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후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석길 (崔錫吉)
최석길은 일제강점기,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일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간부인 김성준, 황기타와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였고, 3월 2일 성남리 시장에서 공약 3장에 대한 연설을 한 후, 천도교인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후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