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희양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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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엄사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에 있었던 사찰터이다. 창건 후 폐허가 되었다가 906년(효공왕 10)에 사목곡(沙木谷)의 승려 양부(陽孚)가 중창하고 선종(禪宗)의 중심도량으로 만들었다. 1065년(문종 19) 11월에는 이 절의 주지 미정(微定)이 「원중상규(院中常規) 10조(十條)」를 정하고 5층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 24립(粒)을 봉안하였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합천 백엄사 (陜川 伯嚴寺)
백엄사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에 있었던 사찰터이다. 창건 후 폐허가 되었다가 906년(효공왕 10)에 사목곡(沙木谷)의 승려 양부(陽孚)가 중창하고 선종(禪宗)의 중심도량으로 만들었다. 1065년(문종 19) 11월에는 이 절의 주지 미정(微定)이 「원중상규(院中常規) 10조(十條)」를 정하고 5층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 24립(粒)을 봉안하였다. 조선 전기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국시대 당나라에서 도신의 법인을 받고 귀국하여 최초로 선도를 전한 승려.
법랑 (法朗)
남북국시대 당나라에서 도신의 법인을 받고 귀국하여 최초로 선도를 전한 승려.
봉암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헌(道憲)이 창건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曦陽山)에 있는 사찰이다. 879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지증대사는 심층거사가 희사한 희양산 일대에 사찰을 짓고 선풍을 널리 펴 희양산문을 열었다. 881년 나라에서 봉암사 이름을 내려 주었다. 봉암사는 후삼국을 거치며 폐허 상태가 되었으나 935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소실 및 쇠퇴와 중건을 거듭하였다. 1915년에 퇴락한 당우를 다시 중건하였으며, 1982년에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수행 도량이 되었다.
희양산 봉암사 (曦陽山 鳳巖寺)
봉암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헌(道憲)이 창건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曦陽山)에 있는 사찰이다. 879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지증대사는 심층거사가 희사한 희양산 일대에 사찰을 짓고 선풍을 널리 펴 희양산문을 열었다. 881년 나라에서 봉암사 이름을 내려 주었다. 봉암사는 후삼국을 거치며 폐허 상태가 되었으나 935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소실 및 쇠퇴와 중건을 거듭하였다. 1915년에 퇴락한 당우를 다시 중건하였으며, 1982년에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수행 도량이 되었다.
신라 및 고려 전기의 불교종파로서 5개의 교종과 9개의 선종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오교구산 (五敎九山)
신라 및 고려 전기의 불교종파로서 5개의 교종과 9개의 선종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지선(智詵)은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연 선승이다. 대부분의 선승들이 중국 유학을 다녀온 것과 달리 지선은 유학 경험이 없었고, 북종선을 계승하였다. 그의 사후에 희양산문에서 그의 법계를 마조계로 설정한 것은 당시 선종의 정통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지선 (智詵)
지선(智詵)은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을 연 선승이다. 대부분의 선승들이 중국 유학을 다녀온 것과 달리 지선은 유학 경험이 없었고, 북종선을 계승하였다. 그의 사후에 희양산문에서 그의 법계를 마조계로 설정한 것은 당시 선종의 정통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