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의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삼국시대 말기까지 교종 종파인 오교(五敎)가 형성되었고, 신라 말 고려 초에 선종(禪宗)의 구산문(九山門)이 형성되어 통일신라 및 고려 전기의 불교계를 총괄하였다.
오교는 열반종(涅槃宗) · 계율종(戒律宗) · 법성종(法性宗) · 화엄종(華嚴宗) · 법상종(法相宗)이다. 열반종은 태종무열왕 때 보덕(普德)이 경복사(景福寺)를 중심으로, 계율종은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이 통도사를 중심으로, 법성종은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분황사(芬皇寺)를 근본사찰로, 화엄종은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부석사(浮石寺)를 중심으로, 그리고 법상종은 경덕왕 때 진표(眞表)가 금산사(金山寺)를 근본도량(根本道場)으로 하여 성립한 것이다.
구산선문의 개창 조사 및 중심 사원은 다음과 같다. ① 실상산문(實相山門)은 홍척(洪陟)이 남원의 실상사에서, ② 가지산문(迦智山門)은 도의(道義)가 장흥 보림사(寶林寺)에서, ③ 사굴산문(闍崛山門)은 범일(梵日)이 강릉 굴산사(崛山寺)에서, ④ 동리산문(桐裏山門)은 혜철(惠哲)이 곡성 태안사(泰安寺)에서, ⑤ 성주산문(聖住山門)은 무염(無染)이 보령 성주사(聖住寺)에서, ⑥ 사자산문(師子山門)은 철감(哲鑑)이 영월 흥녕사(興寧寺)에서, ⑦ 희양산문(曦陽山門)은 도헌(道憲)이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⑧ 봉림산문(鳳林山門)은 현욱(玄昱)이 창원 봉림사(鳳林寺)에서, ⑨ 수미산문(須彌山門)은 이엄(利嚴)이 해주 광조사(廣照寺)에서 각각 개창하였다.
구산문의 대부분은 신라 하대에 성립되었는데, 개산조사(開山祖師)의 제자들이 그 선풍(禪風)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각 문파를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종래의 오교구산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승정(僧政)이 일원화되어 있었던 신라시대에는 학파적 경향은 있었지만 승정을 분리, 운영한 종파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학파불교에서 종파불교로의 전환은 9세기 중반부터 이루어져 10세기 중반까지는 종파별 승정의 기반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오교란 교학을 바탕으로 성립된 교종 종파 전체를 총칭하였고, 구산문과 그 조사의 설정은 고려 후기에 확립된 것이기에 고려 전기의 선종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선종이나 조계종(曹溪宗)이라는 용어가 고려 초부터 쓰였는데, 조계종은 남종선(南宗禪)을 계승한 고려의 선종을 의미하였다고 한다. 고려 전기에는 오교구산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조계종 · 화엄종 · 유가종(瑜伽宗)의 3대 종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