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禪宗)의 한 산문(山門).
설립 배경
선종이 갖는 이러한 특성과 함께 9세기 중반 당의 회창(會昌) 폐불을 계기로 입당 유학승들이 신라로 돌아오면서 특정 개산 조사의 법통을 계승한 문도들이 특정한 사찰을 중심으로 한 산문을 지역에서 형성하였다. 선사들은 거주한 사원을 바탕으로 각각 세력을 이루고 서로 연결된 산문으로 성장하였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제자들이 특정 사원을 중심으로 대집단을 이루었다. 나아가 산문은 왕실, 중앙 귀족, 호족의 후원을 받아 본사를 중심으로 곳곳에 장사를 두면서 경제적 기반을 갖추었다.
변천 및 현황
절중은 15세에 부석사에서 출가해 화엄학을 수학하였다. 그는 19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절중은 도윤의 명성을 듣고 금강산 장담사(長潭寺)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도담선원(道譚禪院)에서 자인(慈忍) 선사의 문하로 16년간 수행하였다. 이후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사자산의 운예(雲乂) 선사의 청에 따라 흥녕선원(興寧禪院)에 머물렀다. 전란이 잇따르게 되자 절중은 상주와 음죽현 원향사(元香寺) 등을 옮겨 다니다가 스승 도윤이 머물렀던 쌍봉사로 갔다. 진성여왕이 절중에게 무량사(無量寺), 영신사(靈神寺)의 주지가 되어주기를 청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지방 세력가인 김사윤(金思尹)의 후원으로 동림사(桐林寺)에 주석하였다. 그러나 전란으로 인해 강화도 은강선원(銀江禪院)으로 옮겼다가 입적하였다. 절중의 제자들이 그의 부도를 동림사에 건립하였으나 탑비는 미처 조성하지 못하였다. 그의 비는 입적한 후 44년이 지난 944년(혜종 원년)에 흥령사에서 건립하였다. 비의 건립에는 광종을 비롯하여 충주 유씨(劉氏) 세력이 주요한 단월(檀越)로 참가하였다.
광종대 국사를 지낸 도봉산 영국사(寧國寺) 혜거(慧炬)는 고려 초 사자산문의 대두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 혜거는 출가 후, 절중의 제자인 도봉산 신정선사(神靖禪師)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혜거는 이후 중국에 유학하여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의 가르침을 받다 귀국하여 국왕의 스승이 되었다. 한편, 혜거가 귀국한 뒤 950년 무렵 적연국사(寂然國師) 영준(英俊)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뒤 영국사로 찾아가 혜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0세기 전반 사자산문은 도윤-절중-신정-혜거-영준으로 이어지는 직계 계보를 형성하며 국사를 배출할 만큼 성장했으며, 고려 초 태조, 광종 등 역대 국왕의 귀의를 받았다. 특히 혜거나 영준이 중국에 유학하여 법안종을 배워온 점은 광종대 법안종 수용과 관련하여 사자산문의 역할을 주목하게 한다.
사자산문과 관련된 주요 사찰로는 화순 쌍봉사, 영월 흥령사, 도봉산 영국사, 합천 영암사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조당집(祖堂集)』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단행본
- 조범환, 『羅末麗初 禪宗山門 開創 硏究』(일조각, 2008)
- 추만호, 『나말여초 선종사상사 연구』(이론과 실천, 1992)
논문
- 최연식, 「고려초 道峯山 寧國寺 慧炬의 행적과 사상 경향 -신발견 塔碑片의 내용 검토를 중심으로-」(『한국중세사연구』 54, 한국중세사학회, 2018)
- 최연식, 「사자산선문의 성립과정에 대한 재검토」(『불교학연구』 21, 불교학연구회, 2008)
- 조범환, 「신라 하대 도윤선사와 사자산문의 개창」(『신라사학보』 10, 신라사학회, 2007)
- 신영문, 「나말여초 사자산문의 사상과 그 성격」(『북악사론』 9, 북악사악회, 2001)
- 최인표, 「나말여초 사자산문의 동향」(『한국전통문화연구』 11,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6)
- 박정주, 「신라 말 고려 초 사자산문과 정치세력」(『진단학보』 77, 진단학회, 1994)
- 최병헌, 「新羅下代 禪宗九山派의 成立」(『한국사연구』 7, 한국사연구회, 197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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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당나라의 선승(709~788). 남종선(南宗禪) 발전에 공이 크며,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라고 주창하여 생활 속의 선(禪)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저서에 ≪어록(語錄)≫ 1권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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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중국 당나라 무종 때의 연호(841~846).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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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절을 처음 세우거나 종파를 새로 연 승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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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화엄종의 교의(敎義)를 연구하는 학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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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함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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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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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중국의 문익 선사의 종지(宗旨)를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 종파. 우리나라에는 10세기 무렵에 지종에 의하여 전래되었다. 화엄종과 선종을 융합한 것으로 화엄종이 왕성했던 고려 초기에도 수용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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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절을 처음 세우거나 종파를 새로 연 승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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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통일 신라 이후 불교가 크게 흥할 때, 승려들이 중국에서 달마의 선법(禪法)을 받아 가지고 와 그 문풍(門風)을 지켜 온 아홉 산문. 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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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장주(藏主)가 사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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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화엄종의 교의(敎義)를 연구하는 학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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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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