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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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가리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개의 촌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은 경주 시가지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을 가리키는데, 이를 감안하면 가리촌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금산가리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개의 촌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은 경주 시가지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을 가리키는데, 이를 감안하면 가리촌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급량부는 신라시대에 6부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체이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문헌 사료 가운데 『삼국사기』에는 단지 두 글자로만 된 '양부(梁部)'로 나오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앞에 '급(及)' 자를 붙여 '급량부(及梁部)'라고 소개하였다. 신라 당대에 작성된 금석문 자료에서는 '喙部'라는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었으며, 그 발음을 둘러싸고 '탁부', '닭부', '훼부'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
급량부 (及梁部)
급량부는 신라시대에 6부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체이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문헌 사료 가운데 『삼국사기』에는 단지 두 글자로만 된 '양부(梁部)'로 나오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앞에 '급(及)' 자를 붙여 '급량부(及梁部)'라고 소개하였다. 신라 당대에 작성된 금석문 자료에서는 '喙部'라는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었으며, 그 발음을 둘러싸고 '탁부', '닭부', '훼부'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
노리부는 신라 진평왕대에 상대등을 역임한 진골 귀족으로, 진평왕 즉위년인 579년 8월에 이찬으로서 상대등의 자리에 올랐다. 진평왕에 앞선 왕인 진지왕이 재위 4년째에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었는데, 그 직후 노리부가 상대등이 된 것을 보면 진지왕 폐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노리부 (弩里夫)
노리부는 신라 진평왕대에 상대등을 역임한 진골 귀족으로, 진평왕 즉위년인 579년 8월에 이찬으로서 상대등의 자리에 올랐다. 진평왕에 앞선 왕인 진지왕이 재위 4년째에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었는데, 그 직후 노리부가 상대등이 된 것을 보면 진지왕 폐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대각간(大角干)은 신라시대에 관리들에게 수여된 관등의 하나로, 제1등 각간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된 관등이다. 신라 17관등제에서 제1등에 해당하는 각간(또는 이벌찬)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되었다. 진흥왕 대 영역 확장 과정에서 군공을 세운 최고위 귀족을 격려하기 위하여 처음 설치한 이후 신라 말까지 공을 세운 귀족들을 대상으로 수여하였다.
대각간 (大角干)
대각간(大角干)은 신라시대에 관리들에게 수여된 관등의 하나로, 제1등 각간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된 관등이다. 신라 17관등제에서 제1등에 해당하는 각간(또는 이벌찬)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되었다. 진흥왕 대 영역 확장 과정에서 군공을 세운 최고위 귀족을 격려하기 위하여 처음 설치한 이후 신라 말까지 공을 세운 귀족들을 대상으로 수여하였다.
신라 진흥왕대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삼년산군(지금의 충청북도 보은) 출신의 지방 유력자이다. 554년 백제가 신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관산성(지금의 충청북도 옥천) 전투 때 백제의 성왕을 붙잡아 참살함으로써 신라군이 대승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도도 (都刀)
신라 진흥왕대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삼년산군(지금의 충청북도 보은) 출신의 지방 유력자이다. 554년 백제가 신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관산성(지금의 충청북도 옥천) 전투 때 백제의 성왕을 붙잡아 참살함으로써 신라군이 대승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돌산고허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촌 가운데 하나이다. 돌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위치한 남산의 고위봉(금오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감안하면 돌산고허촌의 위치는 지금의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
돌산고허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촌 가운데 하나이다. 돌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위치한 남산의 고위봉(금오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감안하면 돌산고허촌의 위치는 지금의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금은 신라 상고기에 사용된 왕호로, 마립간의 이칭이다. 주로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마립간(麻立干)'에 해당하지만, 매금의 '금'이 마립간 이전에 사용된 왕호인 이사금의 끝 글자이기도 하여 종래의 칭호인 이사금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명칭이기도 하다.
매금 (寐錦)
매금은 신라 상고기에 사용된 왕호로, 마립간의 이칭이다. 주로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마립간(麻立干)'에 해당하지만, 매금의 '금'이 마립간 이전에 사용된 왕호인 이사금의 끝 글자이기도 하여 종래의 칭호인 이사금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명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