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신라시대, 관리들에게 수여된 관등의 하나로, 제1등 각간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된 관등.
설치 목적
변천사항
실제로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도 각간의 이칭인 일벌간 앞에 ‘대’ 자가 들어간 대일벌간(大一伐干)의 존재가 확인되어, 대각간에 해당하는 관등이 처음 설치된 것은 진흥왕 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삼국을 통일하면서 김유신과 김인문(金仁問) 등이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하대에는 원성왕의 부친인 김효양(金孝讓)과 경문왕의 아우이자 진성여왕의 배필로 알려진 김위홍(金魏弘) 등이 대각간을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금석문 상에서는 무진사(无盡寺) 종명(745)과 성덕대왕신종명(771)에 각각 김사인(金思仁)과 김옹(金邕)이 대각간이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2005년에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의 내부에서 발견된 묵서명(883)에도 김위홍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관등으로 '대각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참고로 『삼국유사』 권3 탑상편 백률사조에는 효소왕 대에 국선(國仙) 부례랑(夫禮郞)을 대각간으로 삼았다는 설화가 나오는데, 이 경우는 상례를 뛰어넘는 면이 있어, 곧장 신뢰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
- 『삼국유사』
단행본
-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혜안, 2006)
- 한국고대사회연구소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제3권(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논문
- 홍승우, 「6세기 신라 간군 경위의 구성과 성립과정」(『사학연구』 131, 한국사학회, 2018)
- 이문기,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 내부 묵서명의 해석과 대각간과 비의 실체」(『역사교육논집』 55, 한국역사교육학회, 2015)
- 전덕재, 「6세기 금석문을 통해 본 신라 관등제의 정비과정」(『목간과 문자』 5, 한국목간학회, 20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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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어떤 사람의 공적을 평가하여 그에 알맞은 상을 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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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신라의 장군ㆍ외교관(629~694). 자는 인수(仁壽).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 파견되어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효소왕으로부터 태대각간에 추증(追贈)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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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신라 때에 둔, 십칠 관등 가운데 첫째 등급. 자색 관복을 입었다.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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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신라 때에 둔, 십칠 관등 가운데 첫째 등급. 자색 관복을 입었다.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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