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간 ()

고대사
제도
신라시대, 관리들에게 수여된 관등의 하나로, 제1등 각간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된 관등.
이칭
이칭
대각찬(大角湌), 대서발한(大舒發翰), 대일벌간(大一伐干)
제도/관직
설치 시기
진흥왕 대(추정)
폐지 시기
신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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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각간(大角干)은 신라시대에 관리들에게 수여된 관등의 하나로, 제1등 각간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된 관등이다. 신라 17관등제에서 제1등에 해당하는 각간(또는 이벌찬)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되었다. 진흥왕 대 영역 확장 과정에서 군공을 세운 최고위 귀족을 격려하기 위하여 처음 설치한 이후 신라 말까지 공을 세운 귀족들을 대상으로 수여하였다.

정의
신라시대, 관리들에게 수여된 관등의 하나로, 제1등 각간의 상위에 비상설로 설치된 관등.
설치 목적

법흥왕 대에 17관등제가 구비된 이후 최고 관등인 각간에 오른 귀족이 군공을 비롯한 공(功)을 세우게 되었을 때 포상과 격려 차원에서 각간을 뛰어넘는 관등을 수여할 필요가 생기면서 비상설로 두어졌다.

변천사항

『삼국사기』 권38 직관지에는 태종무열왕 때 백제를 멸망시키고 논공행상을 하면서 대장군 김유신(金庾信)에게 대각간을 수여한 것이 시초로 나온다. 그렇지만 『삼국사기』 권44 거칠부 열전에는 551년(진흥왕 12)에 고구려에게서 한강 유역을 탈취하기 위하여 북진을 개시할 때 구진(仇珍) 대각찬(大角湌) 등을 파견하였다고 나온다.

실제로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된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도 각간의 이칭인 일벌간 앞에 ‘대’ 자가 들어간 대일벌간(大一伐干)의 존재가 확인되어, 대각간에 해당하는 관등이 처음 설치된 것은 진흥왕 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삼국을 통일하면서 김유신과 김인문(金仁問) 등이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하대에는 원성왕의 부친인 김효양(金孝讓)과 경문왕의 아우이자 진성여왕의 배필로 알려진 김위홍(金魏弘) 등이 대각간을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금석문 상에서는 무진사(无盡寺) 종명(745)과 성덕대왕신종명(771)에 각각 김사인(金思仁)과 김옹(金邕)이 대각간이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2005년에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의 내부에서 발견된 묵서명(883)에도 김위홍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관등으로 '대각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참고로 『삼국유사』 권3 탑상편 백률사조에는 효소왕 대에 국선(國仙) 부례랑(夫禮郞)을 대각간으로 삼았다는 설화가 나오는데, 이 경우는 상례를 뛰어넘는 면이 있어, 곧장 신뢰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신라에서는 진골보다 하위의 신분인 6두품과 5두품은 관등 승진에 제한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각각 제6등 아찬(阿湌)과 제10등 대나마(大奈麻)의 앞에 ‘중’ 또는 '○중'의 글자가 붙는 아찬이나 대나마 등을 두기도 하였다. 이런 제도를 흔히 중위제(重位制)라고 하는데, 대각간의 경우 그와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관등 승진 제한에 따른 불만 해소 차원이라기보다는 최고 신분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포상책으로 설치된 관등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
『삼국유사』

단행본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혜안, 2006)
한국고대사회연구소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제2권, 제3권(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논문

홍승우, 「6세기 신라 간군 경위의 구성과 성립과정」(『사학연구』 131, 한국사학회, 2018)
이문기,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 내부 묵서명의 해석과 대각간과 비의 실체」(『역사교육논집』 55, 한국역사교육학회, 2015)
전덕재, 「6세기 금석문을 통해 본 신라 관등제의 정비과정」(『목간과 문자』 5, 한국목간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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