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공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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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광수가 1947년 6월 면학서포에서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동명의 단편소설이 1939년 7월 『문장』에 실렸다. 출판사에서 신작이라고 광고했지만, 작품 구상과 스토리는 이 단편소설에서 연원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조신의 꿈」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외부 이야기가 내부 이야기인 꿈을 감싸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현실-꿈-현실의 서사 전개는 동양적 세계인식인 호접몽과 상통하는데, 세속의 덧없음이 꿈의 장치를 통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악몽으로 끝난 승려 조신의 일생은 작가의 친일 행적을 되비추는 역할을 한다.
꿈
「꿈」은 이광수가 1947년 6월 면학서포에서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동명의 단편소설이 1939년 7월 『문장』에 실렸다. 출판사에서 신작이라고 광고했지만, 작품 구상과 스토리는 이 단편소설에서 연원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조신의 꿈」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외부 이야기가 내부 이야기인 꿈을 감싸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현실-꿈-현실의 서사 전개는 동양적 세계인식인 호접몽과 상통하는데, 세속의 덧없음이 꿈의 장치를 통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악몽으로 끝난 승려 조신의 일생은 작가의 친일 행적을 되비추는 역할을 한다.
『단종애사』는 이광수가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총 217회에 걸쳐 연재되었고, 1930년 회동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단종애사』는 애사의 단종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이다. 단종과 수양이라는 대립적 인물 구도를 축으로 왕조적 적통성을 지닌 단종을 지지하는 사육신 계열과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하는 한명회, 정인지 일파의 대결이 그려진다. 작가는 단종의 비참한 운명이 인정과 의리의 면에서 조선인의 장처와 단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종애사 (端宗哀史)
『단종애사』는 이광수가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총 217회에 걸쳐 연재되었고, 1930년 회동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단종애사』는 애사의 단종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이다. 단종과 수양이라는 대립적 인물 구도를 축으로 왕조적 적통성을 지닌 단종을 지지하는 사육신 계열과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하는 한명회, 정인지 일파의 대결이 그려진다. 작가는 단종의 비참한 운명이 인정과 의리의 면에서 조선인의 장처와 단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렌의 애가』는 모윤숙이 1936년 4월부터 12월까지 『여성』에 연재한 글 일부에 다른 미발표 글을 묶어 1937년 간행한 자전적 산문집이다. 조지훈이 모윤숙을 찾아와 단행본으로 내자고 하여 일월서방에서 첫 판을 발간했다. 초판은 39쪽 분량으로, 소제목 없이 1~8신까지 8편의 편지와 5편의 일기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내용을 계속 추가해 증보판을 냈기 때문에 『렌의 애가』의 원본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내밀한 고백체의 이 자전적 산문집은 작중인물 렌과 시몬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연서(戀書)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렌의 애가 (렌의 哀歌)
『렌의 애가』는 모윤숙이 1936년 4월부터 12월까지 『여성』에 연재한 글 일부에 다른 미발표 글을 묶어 1937년 간행한 자전적 산문집이다. 조지훈이 모윤숙을 찾아와 단행본으로 내자고 하여 일월서방에서 첫 판을 발간했다. 초판은 39쪽 분량으로, 소제목 없이 1~8신까지 8편의 편지와 5편의 일기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내용을 계속 추가해 증보판을 냈기 때문에 『렌의 애가』의 원본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내밀한 고백체의 이 자전적 산문집은 작중인물 렌과 시몬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연서(戀書)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마의태자』는 이광수가 1926년 5월 10일부터 1927년 1월 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최초의 장편 역사소설이다. 1928년 1월 15일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동아일보』에 총228회 연재된 『마의태자』는 상편과 하편의 구성을 취했다. 상편은 궁예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면, 하편은 제목으로 삼은 마의태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천 년 사직 통일신라의 망국사를 두 주인공의 패배한 개인사로 그려낸 『마의태자』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비극적 정조로 당시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얻었다.
마의태자 (麻衣太子)
『마의태자』는 이광수가 1926년 5월 10일부터 1927년 1월 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최초의 장편 역사소설이다. 1928년 1월 15일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동아일보』에 총228회 연재된 『마의태자』는 상편과 하편의 구성을 취했다. 상편은 궁예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면, 하편은 제목으로 삼은 마의태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천 년 사직 통일신라의 망국사를 두 주인공의 패배한 개인사로 그려낸 『마의태자』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비극적 정조로 당시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얻었다.
『문예』는 1949년 8월 창간되어 1954년 3월 통권 제21호로 종간된 순문예지이다. 월간으로 발행되었으며, 발행인은 모윤숙이다. 당시 지가 상승으로 모든 출판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미공보원이 종이를 지원하고 일부를 구입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공하여 창간할 수 있었다. 해방기 좌익 문단의 주도권이 대한민국 수립 후 우익 진영으로 기울어지면서, 발표 매체의 재조정이 일어났다. 기존 매체의 접수와 함께 새로 창간된 매체가 『문예』였다. 작품 본위의 편집 방침과 민족문학 건설을 기치로 세계문학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문예 (文藝)
『문예』는 1949년 8월 창간되어 1954년 3월 통권 제21호로 종간된 순문예지이다. 월간으로 발행되었으며, 발행인은 모윤숙이다. 당시 지가 상승으로 모든 출판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미공보원이 종이를 지원하고 일부를 구입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공하여 창간할 수 있었다. 해방기 좌익 문단의 주도권이 대한민국 수립 후 우익 진영으로 기울어지면서, 발표 매체의 재조정이 일어났다. 기존 매체의 접수와 함께 새로 창간된 매체가 『문예』였다. 작품 본위의 편집 방침과 민족문학 건설을 기치로 세계문학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원효대사』는 이광수가 1942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184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완결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 주 휴재 후에 다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사고는 이 작품이 미완성 작품임을 시사한다. 1948년 생활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나」라는 단행본 서문은 연재 당시 작가의 말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조선 고대사를 일본 국체와 통합하려 했던 해방 전 대일 협력을 해방 후 민족정신의 우회적 표명으로 정당화하려 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원효대사 (元曉大師)
『원효대사』는 이광수가 1942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184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완결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 주 휴재 후에 다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사고는 이 작품이 미완성 작품임을 시사한다. 1948년 생활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내가 왜 이 소설을 썼나」라는 단행본 서문은 연재 당시 작가의 말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조선 고대사를 일본 국체와 통합하려 했던 해방 전 대일 협력을 해방 후 민족정신의 우회적 표명으로 정당화하려 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순신』은 이광수가 1931년 6월 26일부터 1932년 4월 3일까지 『동아일보』에 총 178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연재가 끝난 직후인 1932년 9월 20일 대성서림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작품을 연재하기 전 이광수는 1931년 5월 21일부터 6월 10일까지 「충무공 유적 순례」라는 기행문을 『동아일보』에 연재했는데, 이 기행문과 소설은 당시 동아일보사가 주도한 '이순신 유적 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그 의미를 갖는다. 독자의 열띤 성원이 뒷받침되어 운동과 소설이 성공하는 드문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순신 (李舜臣)
『이순신』은 이광수가 1931년 6월 26일부터 1932년 4월 3일까지 『동아일보』에 총 178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연재가 끝난 직후인 1932년 9월 20일 대성서림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작품을 연재하기 전 이광수는 1931년 5월 21일부터 6월 10일까지 「충무공 유적 순례」라는 기행문을 『동아일보』에 연재했는데, 이 기행문과 소설은 당시 동아일보사가 주도한 '이순신 유적 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그 의미를 갖는다. 독자의 열띤 성원이 뒷받침되어 운동과 소설이 성공하는 드문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차돈의 사」는 이광수가 『조선일보』에 1935년 9월 30일부터 1936년 4월 12일까지 총 137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광수가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로 이직한 후에 삼국시대의 설화적 인물인 이차돈을 주인공으로 삼아, 『동아일보』에서 뭇사랑을 받았던 역사소설을 시도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국법으로 금지된 불교를 신라에 포교하고 공인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차돈의 순교자적 삶을 부각한다. 순교자 형상은 천도교·기독교·불교를 아울러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과 초월을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식의 산물이다.
이차돈의 사 (異次頓의 死)
「이차돈의 사」는 이광수가 『조선일보』에 1935년 9월 30일부터 1936년 4월 12일까지 총 137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광수가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로 이직한 후에 삼국시대의 설화적 인물인 이차돈을 주인공으로 삼아, 『동아일보』에서 뭇사랑을 받았던 역사소설을 시도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국법으로 금지된 불교를 신라에 포교하고 공인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차돈의 순교자적 삶을 부각한다. 순교자 형상은 천도교·기독교·불교를 아울러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과 초월을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식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