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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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색채 추상화가 최욱경이 1981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최욱경은 미국 유학을 경험한 여성화가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회화적 기반을 두고 한국적 요소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었다. 「산」에 등장하는 연속되는 구불거리는 곡선은 1979년 귀국한 최욱경이 미적 표현의 대상으로 새롭게 발견한 한국의 산과 섬들의 곡선이다. 선의 부드럽고 날렵한 흐름은 강렬한 색채와 대조되어 신비로운 감정적 흥분을 표현한다. 최욱경은 색채와 형태를 통해 내적 감정을 표현하는 추상화의 명제를 따르면서도 그 구체적인 방법과 기술에서는 특유의 독자적 세계를 형성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산 (山)
「산」은 색채 추상화가 최욱경이 1981년에 제작한 그림이다. 최욱경은 미국 유학을 경험한 여성화가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회화적 기반을 두고 한국적 요소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었다. 「산」에 등장하는 연속되는 구불거리는 곡선은 1979년 귀국한 최욱경이 미적 표현의 대상으로 새롭게 발견한 한국의 산과 섬들의 곡선이다. 선의 부드럽고 날렵한 흐름은 강렬한 색채와 대조되어 신비로운 감정적 흥분을 표현한다. 최욱경은 색채와 형태를 통해 내적 감정을 표현하는 추상화의 명제를 따르면서도 그 구체적인 방법과 기술에서는 특유의 독자적 세계를 형성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최욱경은 해방 이후 「나부 이인」, 「작품 E」, 「산」 등을 그린 화가이다. 1950년대 김기창·박래현 부부와 김흥수 화백 등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6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추상표현주의를 학습했다. 1973년 개인전에서는 단청의 색채와 민화적 모티프, 한지 재료들을 이용한 실험적 작품을 제작했다. 1980년대에는 한국의 산, 바다, 섬의 자연적 곡선에서 차용한 구불거리는 선과 밝은 색채가 결합한 추상화가 등장한다. 최욱경은 조지아 오키프의 영향을 자기화하여 특유의 여성적 색채 추상의 세계를 구현한 작가로 평가 받는다.
최욱경 (崔郁卿)
최욱경은 해방 이후 「나부 이인」, 「작품 E」, 「산」 등을 그린 화가이다. 1950년대 김기창·박래현 부부와 김흥수 화백 등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6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추상표현주의를 학습했다. 1973년 개인전에서는 단청의 색채와 민화적 모티프, 한지 재료들을 이용한 실험적 작품을 제작했다. 1980년대에는 한국의 산, 바다, 섬의 자연적 곡선에서 차용한 구불거리는 선과 밝은 색채가 결합한 추상화가 등장한다. 최욱경은 조지아 오키프의 영향을 자기화하여 특유의 여성적 색채 추상의 세계를 구현한 작가로 평가 받는다.
현명은 조각가 윤효중이 1944년에 제작한 목조 조각이다. 높이 165.8㎝, 너비 119㎝, 두께 36㎝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창덕궁상을 받은 목조 조각 작품이다. ‘현명(弦鳴)’이라는 제목은 활시위를 당겨 쏠 때 긴장한 현이 울리는 소리를 뜻한다. 전통 복장을 한 조선 여성이 활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는 활시위를 한껏 당기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40년대 일제의 전쟁 동원 체제에 부응하는 조선 여성을 상징한다. 식민지 선전 출품 작가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보여준다.
현명 (弦鳴)
현명은 조각가 윤효중이 1944년에 제작한 목조 조각이다. 높이 165.8㎝, 너비 119㎝, 두께 36㎝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창덕궁상을 받은 목조 조각 작품이다. ‘현명(弦鳴)’이라는 제목은 활시위를 당겨 쏠 때 긴장한 현이 울리는 소리를 뜻한다. 전통 복장을 한 조선 여성이 활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는 활시위를 한껏 당기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40년대 일제의 전쟁 동원 체제에 부응하는 조선 여성을 상징한다. 식민지 선전 출품 작가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보여준다.
소년 입상은 김경승이 1943년에 제작한 청동 조각이다. 높이 140.5㎝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경승은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근대 조각의 1세대 작가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류(流)」를 1971년에 다시 청동으로 제작한 것이다. 상체를 벗고 반바지를 입은 짧은 머리의 소년이 손을 뒤로 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한 다리를 뒤로 빼고 몸을 S자로 굽힌 서양의 고전적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얼굴과 몸의 세부는 사실적으로 충실하게 조각이 되어 있다.
소년 입상 (少年 立像)
소년 입상은 김경승이 1943년에 제작한 청동 조각이다. 높이 140.5㎝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경승은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근대 조각의 1세대 작가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류(流)」를 1971년에 다시 청동으로 제작한 것이다. 상체를 벗고 반바지를 입은 짧은 머리의 소년이 손을 뒤로 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한 다리를 뒤로 빼고 몸을 S자로 굽힌 서양의 고전적인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얼굴과 몸의 세부는 사실적으로 충실하게 조각이 되어 있다.
김만술이 1947년에 제작한 청동 조각.
해방 (解放)
김만술이 1947년에 제작한 청동 조각.
조각가 문신(文信)이 1948년에 제작한 유화 및 액자 조각이다. 문신의 초기 작품인 유화에 부조로 직접 조각한 액자를 씌운 회화와 조각이 결합된 작품이다. 문신은 1923년 일본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문안신(文安信)이다. 1961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서 조각을 시작하였고 이후에는 조각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의 조각 작품은 유기체적인 형태를 기초로 생명의 근원적인 역동성을 표현하면서 균형과 불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추상조각이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은 1948년에 제작하여 1949년의 2회 개인전에 출품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기잡이 액자 (고기잡이 額子)
조각가 문신(文信)이 1948년에 제작한 유화 및 액자 조각이다. 문신의 초기 작품인 유화에 부조로 직접 조각한 액자를 씌운 회화와 조각이 결합된 작품이다. 문신은 1923년 일본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문안신(文安信)이다. 1961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면서 조각을 시작하였고 이후에는 조각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의 조각 작품은 유기체적인 형태를 기초로 생명의 근원적인 역동성을 표현하면서 균형과 불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추상조각이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은 1948년에 제작하여 1949년의 2회 개인전에 출품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가 권진규(權鎭圭)가 1953년에 제작한 석조 조각이다. 일본의 이과전(二科展)에 출품하여 특대(特待, 특선)로 뽑혔다. 권진규는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1949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데이코쿠미술학교[帝国美術学校]의 후신인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學] 조각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정식으로 조각을 배웠다. 「기사」의 형태는 돌의 덩어리 안에 말과 그 위에 올라 앉은 사람인 기사의 누드를 새긴 것이다. 「기사」에서 드러나는 말에 대한 관심은 「마두」 뿐만이 아니라 후기에 테라코타 기법으로 제작된 말의 형상을 담은 많은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해서 드러난다.
기사 (騎士)
조각가 권진규(權鎭圭)가 1953년에 제작한 석조 조각이다. 일본의 이과전(二科展)에 출품하여 특대(特待, 특선)로 뽑혔다. 권진규는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1949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데이코쿠미술학교[帝国美術学校]의 후신인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學] 조각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정식으로 조각을 배웠다. 「기사」의 형태는 돌의 덩어리 안에 말과 그 위에 올라 앉은 사람인 기사의 누드를 새긴 것이다. 「기사」에서 드러나는 말에 대한 관심은 「마두」 뿐만이 아니라 후기에 테라코타 기법으로 제작된 말의 형상을 담은 많은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해서 드러난다.
권진규가 1953년에 제작한 석고 조각.
나부 (裸婦)
권진규가 1953년에 제작한 석고 조각.
「남자 나상」은 문신이 1954년에 제작한 조각 작품이다. 문신의 초기 조각 작품이다. 남성 누드라는 아카데믹한 소재를 다룬 초기 수업기의 작품이다. 작품의 대좌에 이름과 제작 연대를 알려주는 “moon 信(신) 54”가 서명되어 있다. 이 작품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만든 것으로, 깡마른 체형의 남성이 고통스럽게 숙고하는 모습으로 내면적인 갈등을 강조한다. 회화 작가로 활동하던 작가가 본격적으로 조각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인 1960년대보다 앞서는 시기의 작품으로 작가의 조각사를 재구성하는 데 참고가 된다.
남자 나상 (男子 裸像)
「남자 나상」은 문신이 1954년에 제작한 조각 작품이다. 문신의 초기 조각 작품이다. 남성 누드라는 아카데믹한 소재를 다룬 초기 수업기의 작품이다. 작품의 대좌에 이름과 제작 연대를 알려주는 “moon 信(신) 54”가 서명되어 있다. 이 작품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만든 것으로, 깡마른 체형의 남성이 고통스럽게 숙고하는 모습으로 내면적인 갈등을 강조한다. 회화 작가로 활동하던 작가가 본격적으로 조각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인 1960년대보다 앞서는 시기의 작품으로 작가의 조각사를 재구성하는 데 참고가 된다.
권진규가 1958년경에 제작한 테라코타 조각 작품.
두상 (頭像)
권진규가 1958년경에 제작한 테라코타 조각 작품.
「등나무」는 이응노가 1940년대에 그린 한국화이다. 한지에 수묵담채로 크기는 세로 130㎝, 가로 117㎝이다. 이응노가 일본 유학한 이후인 194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은 열려진 대문 사이로 집안의 마당과 우물, 마루와 방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구성되었다. 전통적 수묵의 기법을 이용하면서도 사생을 통해 취득한 일상적 풍경이라는 소재, 서양의 일점투시법적인 시점, 직사각형의 형태, 묘사적 필치 등을 채택하여 제작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 작품이 전통적 남종화법에 서양화법의 요소를 절충한 일본의 근대 남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등나무 (藤나무)
「등나무」는 이응노가 1940년대에 그린 한국화이다. 한지에 수묵담채로 크기는 세로 130㎝, 가로 117㎝이다. 이응노가 일본 유학한 이후인 194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은 열려진 대문 사이로 집안의 마당과 우물, 마루와 방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구성되었다. 전통적 수묵의 기법을 이용하면서도 사생을 통해 취득한 일상적 풍경이라는 소재, 서양의 일점투시법적인 시점, 직사각형의 형태, 묘사적 필치 등을 채택하여 제작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 작품이 전통적 남종화법에 서양화법의 요소를 절충한 일본의 근대 남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낙원」은 백남순이 근대기에 서양화법과 전통화법을 절충하여 그린 이상적 풍경을 담은 병풍이다. 근대 초기 여성 서양화가인 백남순의 유일한 일제강점기 유화 작품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서양화와 한국화의 형식을 절충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화면의 구성과 형태에서는 전통 산수화법을 사용하였고, 색채와 명암은 서양화법으로 그렸다.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이용하되 8폭 병풍이 각각 하나의 산수화로 완성되면서도 펼치면 전체가 하나의 그림이 되도록 했다. 이 그림은 동서양의 이상경의 모티프와 회화적 양식들을 결합시켜서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공간인 ‘낙원’을 그린 것이다.
낙원 (樂園)
「낙원」은 백남순이 근대기에 서양화법과 전통화법을 절충하여 그린 이상적 풍경을 담은 병풍이다. 근대 초기 여성 서양화가인 백남순의 유일한 일제강점기 유화 작품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서양화와 한국화의 형식을 절충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화면의 구성과 형태에서는 전통 산수화법을 사용하였고, 색채와 명암은 서양화법으로 그렸다.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이용하되 8폭 병풍이 각각 하나의 산수화로 완성되면서도 펼치면 전체가 하나의 그림이 되도록 했다. 이 그림은 동서양의 이상경의 모티프와 회화적 양식들을 결합시켜서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공간인 ‘낙원’을 그린 것이다.
「뒷골목」은 서동진이 1932년에 그린 수채화다. 종이에 수채로 크기는 세로 48.7㎝, 가로 60.5㎝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중앙 오른편에 소실점을 두고 멀어져가는 골목길을 완만한 사선 구도로 포착한 도시풍경화이다. 빠르고 시원스런 붓질로 골목길의 풍경을 그렸다. 서동진의 고향인 대구의 어느 뒷골목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지역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고향의 풍경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한 작가의 특성이 드러난다. 서동진은 대구 수채화가 단체인 '향토회'를 주도하며 1930년대 대구화단을 발전시켰다.
뒷골목
「뒷골목」은 서동진이 1932년에 그린 수채화다. 종이에 수채로 크기는 세로 48.7㎝, 가로 60.5㎝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중앙 오른편에 소실점을 두고 멀어져가는 골목길을 완만한 사선 구도로 포착한 도시풍경화이다. 빠르고 시원스런 붓질로 골목길의 풍경을 그렸다. 서동진의 고향인 대구의 어느 뒷골목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지역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고향의 풍경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한 작가의 특성이 드러난다. 서동진은 대구 수채화가 단체인 '향토회'를 주도하며 1930년대 대구화단을 발전시켰다.
「나부」는 서진달이 도쿄미숙학교 재학 중에 여성 누드를 그린 유화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진달은 1934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나부」는 재학 중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의 여성 누드는 세부적인 묘사에 치중하지 않았다. 인체의 각 부분을 기하학적인 면으로 구분하여 구조적으로 채색하고 있다. 유학을 마친 서진달은 「시작나체」, 「스토브」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귀국 후에 대구 계성중학교 및 만주 하얼빈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5~47년에는 부산에서 서진달미술연구소를 세우고 미술교습과 연구소를 겸했다.
나부 (裸婦)
「나부」는 서진달이 도쿄미숙학교 재학 중에 여성 누드를 그린 유화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서진달은 1934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나부」는 재학 중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의 여성 누드는 세부적인 묘사에 치중하지 않았다. 인체의 각 부분을 기하학적인 면으로 구분하여 구조적으로 채색하고 있다. 유학을 마친 서진달은 「시작나체」, 「스토브」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귀국 후에 대구 계성중학교 및 만주 하얼빈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5~47년에는 부산에서 서진달미술연구소를 세우고 미술교습과 연구소를 겸했다.
「초여름의 연못」은 이대원이 1940년에 그린 유화이다. 캔버스에 유채로 크기는 세로 72㎝, 가로 91㎝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한 서양화가 이대원의 초기작으로,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양식적으로는 일본 유화가 코지마 젠자부로의 영향이 보이지만, 조선의 풍경을 소재로 대담한 구성, 활달한 붓질과 밝은 색채로 자신감 넘치는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근대 유화의 다양한 양식적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초여름의 연못 (初여름의 蓮못)
「초여름의 연못」은 이대원이 1940년에 그린 유화이다. 캔버스에 유채로 크기는 세로 72㎝, 가로 91㎝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한 서양화가 이대원의 초기작으로,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양식적으로는 일본 유화가 코지마 젠자부로의 영향이 보이지만, 조선의 풍경을 소재로 대담한 구성, 활달한 붓질과 밝은 색채로 자신감 넘치는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근대 유화의 다양한 양식적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남자」는 이마동이 1931~1932년에 그린 유화이다. 1932년 일본의 도쿄미술학교 재학 중 마지막 해에 제작하여 졸업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한 작품이다. 주로 여성, 아이, 도시, 자연 풍경을 다뤘던 다른 출품작들과 달리 베이지색 외투에 양복을 입고 선 짧은 머리의 젊은 남성 지식인을 모델로 했다. 비교적 어두운 색채, 아카데믹한 필치의 전형적인 인물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완성도가 높아 도쿄미술학교 유학생들의 화풍으로 대표되는 근대 유화의 한 지표로 제시할 만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남자 (男子)
「남자」는 이마동이 1931~1932년에 그린 유화이다. 1932년 일본의 도쿄미술학교 재학 중 마지막 해에 제작하여 졸업 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한 작품이다. 주로 여성, 아이, 도시, 자연 풍경을 다뤘던 다른 출품작들과 달리 베이지색 외투에 양복을 입고 선 짧은 머리의 젊은 남성 지식인을 모델로 했다. 비교적 어두운 색채, 아카데믹한 필치의 전형적인 인물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완성도가 높아 도쿄미술학교 유학생들의 화풍으로 대표되는 근대 유화의 한 지표로 제시할 만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이쾌대가 1940년대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유화이다. 세로 72㎝, 가로 60㎝로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다. 붓과 팔레트를 든 자신의 상반신을 큰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이다. 밝은 색채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쾌대가 전통적 모티프에 열중하던 1940년대 전반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가는 배경과 복장, 소품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정면을 바라보는 당당한 자세와 굳게 다문 입술, 부릅뜬 눈으로 엄격하고 자신감 넘치는 기운을 내뿜고 있다. 이쾌대의 자화상 가운데 메시지가 분명하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두루마기를 입은 自畵像)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이쾌대가 1940년대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유화이다. 세로 72㎝, 가로 60㎝로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다. 붓과 팔레트를 든 자신의 상반신을 큰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이다. 밝은 색채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쾌대가 전통적 모티프에 열중하던 1940년대 전반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가는 배경과 복장, 소품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정면을 바라보는 당당한 자세와 굳게 다문 입술, 부릅뜬 눈으로 엄격하고 자신감 넘치는 기운을 내뿜고 있다. 이쾌대의 자화상 가운데 메시지가 분명하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에르블레의 풍경」은 임용련이 1930년에 그린 유화이다. 카드 보드에 유채로 그렸으며, 크기는 세로 24.2㎝, 가로 33㎝이다. 임용련은 일제강점기 서구에 직접 유학하여 서양화를 배운 희귀한 작가군에 속한다. 이 그림은 임용련이 프랑스에 머물면서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작은 하드보드지에 즉석에서 빠르게 풍경을 스케치한 것이다. 전경의 주택은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였으나 원경의 강물과 나무, 하늘 등은 몇 번의 붓질로 간단히 묘사하면서도 매우 능숙하게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냈다. 임용련은 납북 후 생사불명되어 남아있는 작품 수가 극히 적다.
에르블레의 풍경 (Herblay의 風景)
「에르블레의 풍경」은 임용련이 1930년에 그린 유화이다. 카드 보드에 유채로 그렸으며, 크기는 세로 24.2㎝, 가로 33㎝이다. 임용련은 일제강점기 서구에 직접 유학하여 서양화를 배운 희귀한 작가군에 속한다. 이 그림은 임용련이 프랑스에 머물면서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작은 하드보드지에 즉석에서 빠르게 풍경을 스케치한 것이다. 전경의 주택은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였으나 원경의 강물과 나무, 하늘 등은 몇 번의 붓질로 간단히 묘사하면서도 매우 능숙하게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냈다. 임용련은 납북 후 생사불명되어 남아있는 작품 수가 극히 적다.
조선인 유학생 화가들과 일본인 화가가 결성한 미술단체.
청구회 (靑邱會)
조선인 유학생 화가들과 일본인 화가가 결성한 미술단체.
김복진과 안석주가 1923년 결성했던 미술연구단체.
토월미술연구회 (土月美術硏究會)
김복진과 안석주가 1923년 결성했던 미술연구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