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성주탁"
검색결과 총 48건
대전광역시 동구 갈고개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석성.
갈현성 (葛峴城)
대전광역시 동구 갈고개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석성.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 산성.
견두산성 (犬頭山城)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 산성.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계현산성 (鷄峴山城)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삼국시대 때, 백제의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 장사로서 남제에 파견된 사신.
고달 (高達)
삼국시대 때, 백제의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 장사로서 남제에 파견된 사신.
대전광역시 동구 고봉산(古鳳山)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 산성.
고봉산성 (古鳳山城)
대전광역시 동구 고봉산(古鳳山)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 산성.
삼국시대 때, 오경박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학자.
고안무 (高安茂)
삼국시대 때, 오경박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학자.
삼국시대 때, 백제 고목성에서 벌어진 말갈족과의 전투에 참전한 장수.
곤우 (昆優)
삼국시대 때, 백제 고목성에서 벌어진 말갈족과의 전투에 참전한 장수.
삼국시대 때, 『주서』 백제전, 『수서』 동이전 백제조, 『한원』 등에 기록된 백제의 시조.
구태 (仇台)
삼국시대 때, 『주서』 백제전, 『수서』 동이전 백제조, 『한원』 등에 기록된 백제의 시조.
초기국가시대 때, 백제에 귀화한 남옥저의 유민.
구파해 (仇頗解)
초기국가시대 때, 백제에 귀화한 남옥저의 유민.
대전광역시 동구 피골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노고산성 (老姑山城)
대전광역시 동구 피골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산성.
능성 (陵城)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산성.
삼국시대 백제의 재건을 주도하던 부흥운동가. 승려.
도침 (道琛)
삼국시대 백제의 재건을 주도하던 부흥운동가. 승려.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테뫼식으로 축조한 석축 성곽. 산성.
마산동 산성 (馬山洞 山城)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테뫼식으로 축조한 석축 성곽. 산성.
삼국시대 백제의 반걸양전투에 참전한 장수.
막고해 (莫古解)
삼국시대 백제의 반걸양전투에 참전한 장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배방산성 (排方山城)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석축 성곽. 산성.
대전광역시 동구 백골산(白骨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시기에 테뫼식으로 축조된 석축 성곽. 산성.
백골산성 (白骨山城)
대전광역시 동구 백골산(白骨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시기에 테뫼식으로 축조된 석축 성곽. 산성.
백제가 멸망한 뒤 660년에서 663년까지 왕족·군인 등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던 부흥운동.
백제 부흥운동 (百濟 復興運動)
백제가 멸망한 뒤 660년에서 663년까지 왕족·군인 등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던 부흥운동.
보문산성은 대전광역시 보문산에 있는 백제 시기에 테뫼식으로 축조된 석축 성곽이다.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평면은 남동∼북서 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긴 타원형이다. 산성 동북벽은 급경사인 자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석축하지 않았다.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서남벽으로, 16단에 3.42m의 높이다. 서문 터와 남문 터가 남아 있는데 서문이 주된 출입문이다. 북단의 장대지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다. 성안에서 특별한 시설물은 확인되지 않았고 백제·고려 시대 와편이 나왔다. 이 산성은 1991년에 복원되었다.
보문산성 (寶文山城)
보문산성은 대전광역시 보문산에 있는 백제 시기에 테뫼식으로 축조된 석축 성곽이다.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평면은 남동∼북서 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긴 타원형이다. 산성 동북벽은 급경사인 자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석축하지 않았다.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서남벽으로, 16단에 3.42m의 높이다. 서문 터와 남문 터가 남아 있는데 서문이 주된 출입문이다. 북단의 장대지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다. 성안에서 특별한 시설물은 확인되지 않았고 백제·고려 시대 와편이 나왔다. 이 산성은 1991년에 복원되었다.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사촌으로 도침과 부흥운동을 전개한 귀족.
복신 (福信)
삼국시대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사촌으로 도침과 부흥운동을 전개한 귀족.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손자이자 태자 효의 아들로,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의자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을 자처하며 사비성을 지키려 하자 부당함을 말하며 대립한 왕족.
부여문사 (扶餘文思)
백제의 제31대 의자왕의 손자이자 태자 효의 아들로,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의자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을 자처하며 사비성을 지키려 하자 부당함을 말하며 대립한 왕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