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신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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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창립된 한일 합작의 친일 미술단체.
단광회 (丹光會)
1943년 창립된 한일 합작의 친일 미술단체.
향토회는 1930∼1935년 대구에서 순수예술 지향의 화가들이 모여 결성한 미술단체이다. 1927년 대구의 젊은 작가들이 조직한 미술 문예단체인 '0과회' 해체 후 회원 중 순수예술 지향의 화가들이 모여 결성했다. 주요 회원은 서동진·박명조·최화수·김성암·이인성·배명학 등이다. 1930년 정기전 개최 이후 1935년까지 총 6회의 정기전을 개최하여 대구 미술의 발전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향토회는 조선 향토색론의 실천적 집단이자, 중앙의 첨예한 미술이론을 성실하게 수행한 미술 단체로 1930년대 전반기 서양화가 정착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향토회 (鄕土會)
향토회는 1930∼1935년 대구에서 순수예술 지향의 화가들이 모여 결성한 미술단체이다. 1927년 대구의 젊은 작가들이 조직한 미술 문예단체인 '0과회' 해체 후 회원 중 순수예술 지향의 화가들이 모여 결성했다. 주요 회원은 서동진·박명조·최화수·김성암·이인성·배명학 등이다. 1930년 정기전 개최 이후 1935년까지 총 6회의 정기전을 개최하여 대구 미술의 발전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향토회는 조선 향토색론의 실천적 집단이자, 중앙의 첨예한 미술이론을 성실하게 수행한 미술 단체로 1930년대 전반기 서양화가 정착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서양화가 이인성이 1935년에 그린 유화.
경주의 산곡에서 (慶州의 山谷에서)
서양화가 이인성이 1935년에 그린 유화.
서양화가 이인성이 1934년에 그린 유화.
가을 어느 날
서양화가 이인성이 1934년에 그린 유화.
서양화가 이인성이 1934년에 그린 수채화.
여름 실내에서 (여름 室內에서)
서양화가 이인성이 1934년에 그린 수채화.
서양화가 이종우가 1927년에 제작한 유화.
모부인 초상 (某夫人 肖像)
서양화가 이종우가 1927년에 제작한 유화.
자화상은 서양화가 장욱진이 1951년에 그린 유화이다. 장욱진이 6·25전쟁 중 종군 화가단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안정을 찾던 시기의 작품이다. 그림 그릴 재료가 없어서 엽서 크기의 작은 종이에 물감 몇 개로 그렸다. 화면을 좌우로 구획하듯 황금빛으로 물든 논 사이로 ㄱ자 모양의 붉은 길이 나 있다. 그 길 위에는 정장 차림의 신사와 뒤쫓아 오는 강아지가 그려져 있다. 배경을 노란색의 짧은 붓 터치로 묘사해 풍요로우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전란으로 인한 혼란한 현실을 예술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심정이 이 자화상에 담겨 있다.
자화상 (自畵像)
자화상은 서양화가 장욱진이 1951년에 그린 유화이다. 장욱진이 6·25전쟁 중 종군 화가단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안정을 찾던 시기의 작품이다. 그림 그릴 재료가 없어서 엽서 크기의 작은 종이에 물감 몇 개로 그렸다. 화면을 좌우로 구획하듯 황금빛으로 물든 논 사이로 ㄱ자 모양의 붉은 길이 나 있다. 그 길 위에는 정장 차림의 신사와 뒤쫓아 오는 강아지가 그려져 있다. 배경을 노란색의 짧은 붓 터치로 묘사해 풍요로우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준다. 전란으로 인한 혼란한 현실을 예술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심정이 이 자화상에 담겨 있다.
해방 이후 「돈키호테」·「어떤 탄생」·「자화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변종하 (卞鐘下)
해방 이후 「돈키호테」·「어떤 탄생」·「자화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전혁림은 해방 이후 「늪」, 「통영항」, 「한국의 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38년 부산미술전에 입선하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정물」로 입선했다. 1952년 부산 밀다원 다방에서 1955년까지 해마다 개인전을 열었다. 1970년까지 통영 일대와 인근의 갯마을 등 향토적 풍정을 활달한 붓놀림, 짙은 청색조의 추상적인 화면, 부감법으로 그려냈다. 전혁림은 중앙화단과 거리를 두고 고향 통영과 부산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전혁림 (全爀林)
전혁림은 해방 이후 「늪」, 「통영항」, 「한국의 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38년 부산미술전에 입선하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정물」로 입선했다. 1952년 부산 밀다원 다방에서 1955년까지 해마다 개인전을 열었다. 1970년까지 통영 일대와 인근의 갯마을 등 향토적 풍정을 활달한 붓놀림, 짙은 청색조의 추상적인 화면, 부감법으로 그려냈다. 전혁림은 중앙화단과 거리를 두고 고향 통영과 부산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