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회 ()

회화
단체
1930∼1935년 대구에서 순수예술 지향의 화가들이 모여 결성한 미술단체.
정의
1930∼1935년 대구에서 순수예술 지향의 화가들이 모여 결성한 미술단체.
설립목적

연중행사로 매년 가을 정기 전시회를 통해 회원들의 작품을 발표하고, 대구 미술계를 진전시키고자 설립되었다. 1933년에는 회원 서병기의 주선 아래 덕산정에 향토회 양화연구소를 개설하고 동회 회원을 중심으로 양화 연구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1927년 대구의 젊은 작가들이 조직한 미술 문예단체인 0과회가 일본 고등계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자 1929년 6월 3회전을 끝으로 해체되고, 0과회 회원 중 순수예술 지향의 화가들이 모여 1930년 향토회를 결성했다. 초대 회장인 서동진은 대구 조양회관교육부 주최, 중외·조선·동아일보사 대구지국의 후원 및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 무영당서점, 대구양말소의 후원을 얻어 조양회관에서 창립전을 개최했다. 이후 매년 가을에 정기 발표회를 가져 총 6회전까지 개최했다. 향토회전의 주요회원은 서동진(徐東辰)·박명조(朴命祚)·최화수(崔華秀)·김성암(金星岩)·이인성(李仁星)·배명학(裴命鶴) 등이었다.

제1회 향토회전은 1930년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조양회관 대강당에서 이인성이 13점, 김성암이 8점, 박명조 8점, 서동진 4점, 김용준(金瑢俊) 3점, 최화수가 12점을 출품하여 총 48점이 전시되었다. 매일 2천명 이상의 입장객을 모아 대구화단의 기록적 성사를 보여주었다.

제2회 미술전은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 동안 조양회관 상층에서 서동진⋅김성암⋅김용준⋅최화수⋅이인성⋅박명조⋅배명학 7명의 회원이 50점의 유화와 수채화를 출품하였다.

제3회 향토회전은 10월 15일부터 조양회관에서 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첫날 관객만 800명이 몰려들었는데, 이처럼 높은 인기는 개막식 날 이인성이 제국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배명학⋅서동진⋅박명조⋅최화수⋅김용조(金龍祚)가 참여했으며, 이인성은 참여하지 않았다.

제4회전은 1933년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대구 조양회관에서 열렸다. 이전 전시에 비해 한달 정도 늦은 11월에 개최되었으며 다수의 신입회원과 대작의 출품으로 볼거리를 더했다. 이 전시에서는 비회원의 작품도 진열되었으며, 이해 서병기(徐丙麒)의 주선 아래 덕산정에 ‘향토회 양화 연구소’를 개설했다.

제5회전은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대구역 앞 상품진열관에서 회원작품 50여 점과 추천작품 20여 점의 유채, 수채화 70여 점과 원로작가들의 찬조작품인 수묵화 20여 점이 전시되었다. 이해 전시회에는 회원 외에도 추천작가 출품 및 찬조 출품제도를 마련했다. 출품 회원은 대구의 유채⋅수채화가들로 서병기⋅박명조⋅서동진⋅최화수⋅이인성⋅ 김성암⋅하마무라 미츠오(濱村文雄)⋅배명학⋅이현택(李鉉澤)이었고, 추천작가는 서병기⋅김용조⋅김합교(金哈敎)⋅백문영(白文英)이었다. 찬조 출품자는 서병오(徐丙五)와 서동균(徐東均)⋅허섭(許燮)⋅김진만(金鎭萬) 등으로 수묵채색화를 출품했다. 회원 가운데 일본인도 참여시켜 향토미술단체의 일본인 가입과 전시의 명칭을 ‘향토미술 전람회’라고 명명했다.

제6회 향토회전은 1935년 11월 7일부터 10일까지 대구 이비시야 2층 강당에서 회원 작품 60여 점을 전시했다. 출품 회원은 서병기⋅서동진⋅최화수⋅이인성⋅박명조⋅김용조⋅김성암⋅배명학과 일본인 1인이었다.

이후 향토회전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없으며, 1935년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대신 향토회의 중심작가로 화단에서 명성을 얻고 있던 이인성과 김용조 등은 남조선미술전람회(南朝鮮美術展覽會)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1930년대 전반기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소집단 미술운동 단체로, 총 6회의 정기 발표회를 개최하여 대구미술이 발전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비록 한 지역에 국한된 활동이었지만, 조선 향토색론의 충실한 실천적 집단이자, 중앙의 첨예한 미술이론을 성실하게 수행한 미술단체로, 1930년대 전반기 서양화가 정착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향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전』(국립현대미술관, 2012)
『한국근대미술의 역사-1800∼1945 한국미술사사전』(최열, 열화당, 1996)
「대구의 초기 수채화단 성립과 1930년 향토회 발족배경」(이중희, 『한국근현대미술사학』제23집, 2012)
「향토회와 대구 화단」(윤범모, 『한국근대미술사학』 제4집, 1996)
「이인성(1912∼1950)의 회화 연구-1930년대를 중심으로」(신수경, 홍익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6)
「대구향토회 주최 제육회 미술전」(『조선일보』, 1935. 11. 6)
「제오회 향토미술전람회」(『조선일보』, 1934. 11. 25)
「대구서는 향토회전」(『조선일보』, 1931. 10. 15)
「대구양화전람회」(『조선일보』, 193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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