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윤해동"
검색결과 총 7건
이혜준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마을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마을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일 만세시위로 검거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3월 4일 사천시장에 모여 사천 헌병주재소로 향하다가 일제 헌병과 충돌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격렬한 시위 끝에 일제 군경에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7월 1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혜준 (李兮俊)
이혜준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마을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마을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일 만세시위로 검거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3월 4일 사천시장에 모여 사천 헌병주재소로 향하다가 일제 헌병과 충돌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격렬한 시위 끝에 일제 군경에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7월 1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흥돌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의 3 · 1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4일 마을 주민과 함께 동리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하였다. 3월 25일에는 태극기를 만들고 마을 주민을 모아 독립만세를 외치며 마을 안을 시위 행진하였다. 이틀 동안의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1920년 2월 10일 옥고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이흥돌 (李興乭)
이흥돌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의 3 · 1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4일 마을 주민과 함께 동리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하였다. 3월 25일에는 태극기를 만들고 마을 주민을 모아 독립만세를 외치며 마을 안을 시위 행진하였다. 이틀 동안의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1920년 2월 10일 옥고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최석길은 일제강점기,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일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간부인 김성준, 황기타와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였고, 3월 2일 성남리 시장에서 공약 3장에 대한 연설을 한 후, 천도교인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후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석길 (崔錫吉)
최석길은 일제강점기,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일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간부인 김성준, 황기타와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였고, 3월 2일 성남리 시장에서 공약 3장에 대한 연설을 한 후, 천도교인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후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최석일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면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정주군 정주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정주교구장으로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가 연합하여 진행한 대규모 만세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태극기를 흔들고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양팔을 잃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최석일 (崔晳一)
최석일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면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정주군 정주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정주교구장으로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가 연합하여 진행한 대규모 만세운동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태극기를 흔들고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양팔을 잃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최승탁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내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일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천도교와 개신교가 연합하여 고종황제 추도식을 거행한 후, 최승탁은 시위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삼창한 후, 시위 행진을 주도하였다. 시위대에 위협을 느낀 일제 헌병들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9월 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최승탁 (崔承鐸)
최승탁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내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일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천도교와 개신교가 연합하여 고종황제 추도식을 거행한 후, 최승탁은 시위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삼창한 후, 시위 행진을 주도하였다. 시위대에 위협을 느낀 일제 헌병들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9월 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최윤식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 강하면 · 양서면 · 고읍면이 연합하여 전개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양평군 연합시위에 참여하였다. 양부인 최대현이 주도하였던 고종 승하 애도 기부금 모집 과정에 참가하여 취지문을 인쇄하고 배포하였다.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연이어 만세시위를 벌였고, 4월 3일 강상면 · 강하면 · 양서면 · 고읍면 4개 면 연합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최윤식 (崔允植)
최윤식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 강하면 · 양서면 · 고읍면이 연합하여 전개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양평군 연합시위에 참여하였다. 양부인 최대현이 주도하였던 고종 승하 애도 기부금 모집 과정에 참가하여 취지문을 인쇄하고 배포하였다.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연이어 만세시위를 벌였고, 4월 3일 강상면 · 강하면 · 양서면 · 고읍면 4개 면 연합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최익선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촌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3일 연길현 용정촌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용정촌 서전평야에 모인 조선인들이 독립선언 축하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 행진을 하였는데, 대규모 시위대의 기세에 놀란 중국 보병단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최익선 (崔益善)
최익선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촌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3일 연길현 용정촌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용정촌 서전평야에 모인 조선인들이 독립선언 축하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 행진을 하였는데, 대규모 시위대의 기세에 놀란 중국 보병단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