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최근무"
검색결과 총 11건
대한제국기 때, 호남창의회맹소에서 도통령으로 활약한 의병장.
김용구 (金容球)
대한제국기 때, 호남창의회맹소에서 도통령으로 활약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동생 김원범과 함께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김원국 (金元國)
대한제국기 때, 동생 김원범과 함께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형 김원국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대동창의단을 조직하여 중군장으로 활약한 의병.
김원범 (金元範)
대한제국기 때, 형 김원국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대동창의단을 조직하여 중군장으로 활약한 의병.
대한제국기 때,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남창의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문태수 (文泰洙)
대한제국기 때,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남창의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기산도 (奇山度)
대한제국기 때,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기삼연은 개항기 호남창의맹소의 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51년(철종 2)에 태어나 1908년(순종 1)에 사망하였다.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맹소 대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9월 고창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영광·부안·정읍 등지에서도 연승하였다. 12월 의병부대를 이끌고 담양 추월산성에 들어갔다가 적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탈출에 성공하여 순창 산중에 은신하던 중에 체포되어 1908년 1월 광주 서천교 아래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기삼연 (奇參衍)
기삼연은 개항기 호남창의맹소의 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51년(철종 2)에 태어나 1908년(순종 1)에 사망하였다.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맹소 대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9월 고창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영광·부안·정읍 등지에서도 연승하였다. 12월 의병부대를 이끌고 담양 추월산성에 들어갔다가 적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탈출에 성공하여 순창 산중에 은신하던 중에 체포되어 1908년 1월 광주 서천교 아래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대한제국기 때, 김율 의진에서 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직접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심수택 (沈守澤)
대한제국기 때, 김율 의진에서 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직접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개항기 때, 선략장군 부사과, 초계군사 겸 내금위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양한규 (梁漢奎)
개항기 때, 선략장군 부사과, 초계군사 겸 내금위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전라남도 보성에서 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안규홍 (安圭洪)
대한제국기 때, 전라남도 보성에서 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고막병참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전기홍 (全其泓)
대한제국기 고막병참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이석용은 대한제국기 임실, 순창, 태인, 남원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1878년(고종 15)에 태어나 1914년에 사망했다. 1907년 기삼연이 호남창의맹소를 구성하자 전해산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의병창의동맹이라는 독자적인 의진을 구축하였다.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진안·용담·정천·임실·순창 등지를 거쳐 태인·남원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의진을 해산한 후 잠행하던 중 붙잡혀 1914년 1월에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4월 대구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의병활동에 관한 진중일기를 남겨 『정재선생호남창의일록』이 간행되었다.
이석용 (李錫庸)
이석용은 대한제국기 임실, 순창, 태인, 남원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1878년(고종 15)에 태어나 1914년에 사망했다. 1907년 기삼연이 호남창의맹소를 구성하자 전해산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의병창의동맹이라는 독자적인 의진을 구축하였다.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진안·용담·정천·임실·순창 등지를 거쳐 태인·남원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의진을 해산한 후 잠행하던 중 붙잡혀 1914년 1월에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4월 대구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의병활동에 관한 진중일기를 남겨 『정재선생호남창의일록』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