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산 강천사 ( )

불교
유적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剛泉山)에 있는 사찰.
이칭
이칭
복천사(福川寺), 복천사(福泉寺), 용천사(龍泉寺), 부도암(浮屠庵)
유적/건물
소재지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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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강천사는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신라 진성왕 1년(887)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혹은 신령(信靈)이 광덕산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강천사 오층석탑과 금강문, 197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순창 삼인대, 석등 등이 있다.

키워드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剛泉山)에 있는 사찰.
건립 경위와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주1이다. 신라 진성왕(眞聖王, 재위 887897) 1년(887)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조선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13년(1482)에 작성된 「강천사모연문」에 따르면 신령(信靈)이 광덕산(廣德山)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주2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재위 13131330, 13321339) 3년(1316) 덕현(德賢)이 오층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조선 성종 13년(1482) 중조(中照)가 신말주(申末舟)의 부인 설씨의 시주를 얻어 주3. 폐허가 된 사찰을 중창할 때, 부근에 부도가 있으므로 절 이름을 부도암(浮屠庵)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이 절과 12개의 부속 암자가 전소되었으며,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37년(1604) 태능(太能)이 중창하여 강천사는 이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36년(1760)에 편찬된 『옥천군지』에는 불전 3개소, 주4이 12개소, 명적암(明寂庵), 용대암(龍臺庵), 연대암(連臺庵), 왕주암(王住庵), 적지암(積智庵) 등 12개의 부속 암자가 있었고 5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적혀 있다. 그중 왕주암은 후삼국의 분쟁이 한창이던 때에 왕건이 이 암자에서 주5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1855년 금용당(金容堂)이 재건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보광전(普光殿) · 첨성각(瞻星閣) · 칠성각의 주6들이 불타 버렸다.

그 뒤 주지 김장엽(金奬燁)이 1959년에 첨성각을, 1977년 관음전을, 그리고 이듬해 보광전을 신축한 뒤 비구니의 수도 주7으로 전승되고 있다. 1992년 보광전을 대웅전으로 바꾸었고, 1997년 첨성각을 헐고 복원하였다.

현재는 대웅전, 보광전, 관음전, 주8 등이 있다.

형태와 특징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강천사 오층석탑과 금강문(金剛門), 197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순창 삼인대(三印臺) 등이 있다. 오층석탑은 고려 충숙왕 3년(1316) 덕현이 중창할 때 건립한 탑이다. 이 탑의 북쪽 약 1m 지점에는 주9주10만이 남아 있는 석등이 있다.

금강문 역시 1316년 덕현이 절 주위의 풍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전한다. 자연 암석으로 된 사각문으로 높이 8m, 너비 4m이다. 삼인대는 세 사람의 관인을 소나무에 걸었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강천사 모과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로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역사적으로 이 절에는 비구승보다 비구니들이 많이 머물렀는데, 그 까닭은 도선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바뀌고 도량이 정화된다.”라고 한 예언에 따라 절을 유지하여 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절에는 천년을 살아 온 지네가 인간으로 변신하려다가 법당에서 피우는 향내음이 너무 독해서 인간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앙갚음으로 요괴가 되어 매일 밤 승려 한 사람씩을 죽였다는 전설과 거지 · 승려 그리고 돈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강천사모연문」
『옥천군지』
주석
주1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주2

갈대나 짚, 풀 따위로 지붕을 엮은 암자. 우리말샘

주3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주4

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佛道)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집. 우리말샘

주5

남의 집에서 묵다. 우리말샘

주6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7

부처나 보살이 도를 얻는 곳. 또는 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 여러 가지로 뜻이 바뀌어, 불도를 수행하는 절이나 승려들이 모인 곳을 이르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8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주9

상대석과 하대석 사이에 있다는 뜻으로, ‘간석’을 달리 이르는 말. 석등(石燈)의 화사석에 받치는 대석이다. 우리말샘

주10

탑이나 석등 따위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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