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이다.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의 아버지 효양(孝讓)이 그의 숙부를 추모하여 창건하였다. 『삼국유사』가 집필될 당시 세간에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이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 안에 감추었기 때문에 사찰의 이름을 무장사(鍪藏寺)라 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미타전 안에는 소성왕(昭聖王, 재위 798~800)의 비인 계화왕후(桂花王后)가 먼저 세상을 떠난 왕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성한 아미타불상과 신중(神衆)이 봉안되어 있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편 「무장사미타전(鍪藏寺弥陁殿)」 조에 의하면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의 아버지 효양(孝讓)이 그의 숙부인 파진찬(波珍飡)을 추모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가 집필될 당시 세간에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이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 안에 감추었기 때문에 사찰의 이름을 무장사(鍪藏寺)라 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효양의 생몰 연대로 사찰의 주1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그가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주2이 된 시기가 원성왕 재위 원년인 785년 2월이므로 사망한 시점은 늦어도 784년이 된다. 무장사는 효양이 생전에 건립한 사찰이므로 784년 이전에 건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절에 있었던 미타전은 어떤 주3이 석탑의 동남쪽 언덕에 앉아서 서쪽을 향하여 많은 대중들에게 주4을 하고 있는 꿈을 꾼 노승이 건립한 것이다. 미타전 안에는 소성왕(昭聖王, 재위 798~800)의 비인 계화왕후(桂花王后)가 먼저 세상을 떠난 왕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아미타불에게 지성으로 귀의하면 구원을 맞이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왕후가 입던 여러 가지 옷과 재물을 모두 주5 명장(名匠)에게 만들게 한 아미타불상과 주6이 봉안되어 있었다.
『삼국유사』가 저술될 때까지 절은 남아 있었지만 미타전은 허물어졌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미타상을 조성한 인연을 적은 주7인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가 있는데, 2011년에 절터에 남아 있던 귀부, 이수와 파편으로 발견된 비편으로 복원한 것이다. 주8은 주9의 글씨를 집각한 것인데, 1915년 파편 가운데 3조각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이 비편의 발견으로 절 터가 무장사임이 확인되었고, 『삼국유사』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보여 이 사적비의 내용을 참고하여 『삼국유사』 「무장사미타전」 조가 집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숲 사이에 방치되었던 폐탑을 복원한 삼층석탑도 남아 있는데, 사적비와 탑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탑의 건립 시기는 탑의 양식을 근거로 9세기로 보기도 하지만, 사적비의 조성 연대를 800년으로 기록한 『해동역사(海東繹史)』를 근거로 800년 이전으로 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사방 0.9m인 석등(石燈)의 주10과 미타전의 자리로 짐작되는 곳에 10개의 초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