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주1이다. 17세기에 쓰고 18세기에 세워진 사적비에 따르면, 안심사는 638년(선덕여왕 7)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고,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주2, 고려 말기에는 조구(祖丘)가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뒤 1601년(선조 34)에 수천(守天)의 중창을 거쳐 1710년(숙종 36)에는 신열(信悅)이 주3.
사적비가 세워진 당시 안심사에는 대웅전과 약사전 등 30여 개의 당우와 석대암(石臺庵) · 문수전(文殊殿) 등 12개의 암자가 부속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759년경에는 옛날부터 안심사에 전해 내려오던 부처님의 치아 1개와 사리 10과(果)를 봉안하기 위하여 명응(明鷹)이 시주를 받아 5개월에 걸쳐서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세웠다. 이 계단을 건립할 때 세조가 직접 글씨를 써서 보냈는데, 이 글씨를 보관하기 위한 어서각(御書閣)도 함께 건립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고, 소규모의 주4만이 남아 있었으나, 1991년 적광전과 주5를 건립하면서 인법당을 해체하였다. 1995년에는 일주문과 법화불교대학을 세웠으며, 산내 암자인 약사암 법당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국가유산으로는 대웅전 터의 초석과 2005년 보물로 지정된 완주 안심사 금강계단,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안심사 사적비, 2005년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안심사 소장 동종 등이 있다. 금강계단과 부도전은 절에 전해 내려오던 진신 주6 1과 및 신골 사리 10과 등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영조 35년(1759)에 세운 것이다. 금강계단에는 높이 175㎝, 탑신둘레 315㎝의 석종이 있으며, 주7은 연화문으로 장식하였고, 주8으로 주9를 올려놓았다. 또, 절의 입구에는 현재 3기의 부도가 남아 있는데, 그 중 1기는 서환당(瑞喚堂)의 것이다.
한국전쟁 때 많은 전각이 소실되어 현재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17~18세기 안심사의 사역 및 전각의 양상과 함께 특히 금강계단의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는 사적비는 조선 후기 불교계의 귀중한 사료이다.